▲ 대전 동춘당 고택 가묘 정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대전 동춘당 고택’과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는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이전 충정지역 살림집 유추

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대전 동춘당 고택은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옮겨지었다. 현재는 1835년 중건할 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특히 상량문(上樑文,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은 내력 등을 적은 글) 기록 등을 통해 변천 과정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고택의 안채는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드문 모양이다. 중앙에 놓인 6칸 규모의 대청과 양통집(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딸려 있으며 측면이 2칸인 집) 구조인 서쪽의 날개채, 세로로 긴 안마당 구성은 이 지역 상류주택임을 보여준다. 규모가 큰 일자형의 사랑채는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별도의 마루방을 갖고 있다.

▲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 큰 사랑채 정면. (제공: 문화재청)

◆조선 중기 대전지역 살림집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는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하는 건축적 가치를 지닌다. 이곳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분가해 지은 주택이다.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 옮겨 지어 현재 모습을 이뤘다.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는 17~18세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한시 134수를 남겼다. 이곳은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 숭실재 정면 (제공: 문화재청)

◆사찰→재실 변화과정 담겨

중요민속문화재 제 288호로 지정된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는 사찰에서 재실로 변화·증축돼가는 과정 등이 잘 남아있다.

이곳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1515~1573)의 묘소를 수호하고 묘제를 지내는 곳이다. 16세기 중반 이전에 사찰로 사용하던 건물(숭실재)을 인수해 사용하다, 18세기 초부터는 영모루, 대문간채 등 여러 건물을 지어 현재 모습이 탄생됐다.

금계재사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능골 안쪽에 있다. 주변에는 ‘안동권씨 능동재사(중요민속문화재 제183호)’ ‘권태사 신도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3호)’ ‘권태사 권형 묘사’ 등 재사와 묘소가 있다. 이곳은 ‘능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큰 무덤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전저후고(前低後高)형 대지의 전면에 중층의 두 누각(영모루, 소루)이 높고 길게 자리한다. 뒤에는 숭실재와 동부속채가 누각과 마주 보고 있다. 앞쪽 마당 좌·우측에는 대문간채와 동재가 각각 있다.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을 이룬다.

특히, 숭실재는 영쌍창(楹雙窓, 문이 두 개인 쌍창의 중간에 문설주를 둔 것) 등 17세기 이전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를 지녔다. 건축사적 가치가 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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