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조현병 딛고 현재는 권익옹호 활동
“정신질환자 범죄는 일부분”
조현병 모든 증세 겪어
환자 100여명 자립 도와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정신적 질환이 의심된다.”

살인과 같은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의 일선 경찰서가 관할 내에 정신질환자들의 명단을 수집해 논란이 됐다.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에 대해 ‘편견과 오해’라고 입을 모은다.

정신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 중인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를 만나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15년간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어느 날 찾아온 낯선 존재

2000년 12월. 낯선 존재가 찾아왔다.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존재. 한둘이 아니었다. 몸 안에서 우글우글 대는 목소리와 허공의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넌 밥 먹고 하는 일이 뭐니?” “당장 이사 가지 않으면 큰일을 겪게 될거야.”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멈추지 않고 괴롭혔다. 환청이었다. 결국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입원해야겠어요.”

김 대표는 자신이 앓고 있는 ‘조현병’ 증상을 구체적이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는 환청, 환시, 환미(맛), 환후(냄새), 망상 등 조현병의 모든 증세를 겪으며 2000년 2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약 4년간 입·퇴원을 반복했다. 평범한 가전제품매장의 영업사원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조현병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제 눈에 들어오는 글을 읽기도 하더라고요. 혹시 영어책도 읽어줄까 싶어 책을 펴니까 어떤 여자가 유창한 실력으로 영어를 읽어 내려가는 거에요. 전 영어를 잘 못하는데 말이죠. 허허허.” 적극적이고 유쾌한 그의 설명은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기자를 오히려 당황스럽게 했다.

김 대표는 이후 꾸준히 외래진료를 받아왔고 지금은 가끔 병원에 들를 정도로 호전됐다.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 100여명의 자립을 돕는 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6년 사귄 여자친구와 올가을 결혼 계획도 갖고 있다.

◆“정신질환자도 이웃일 뿐”

김 대표는 노숙인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한 번도 남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조심스레 건네는 ‘강남 살인사건’에 대한 질문에 그는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은 0.2~0.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실제 2012년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총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강력범죄자 중 정신장애인 비율은 2.1%다.

“강력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정신과 병력부터 언급하는 것은 정신분열증 환자 전체가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거에요. 정신분열증 환자가 일으키는 범죄는 전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에요.”

한두 명의 일탈행위자로 인해 정신 장애인 전체가 마치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정신질환자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통계를 보면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에 50만명 이상 살아가고 있는데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들도 음지에만 있지 말고 재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고 그는 힘줘 말했다. 정신질환자인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 범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

“조현병은 우울증이 지속되고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무너지는 것이죠. 약물치료와 입원치료를 받고 나서도 정신병력이 있으면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정신적 질환을 사람이 사는 삶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죠. 이들도 단순히 어떤 병을 앓고 있는 이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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