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문덕수

닳고 닳아 반들반들 모지라진 빈 지게
길 잃은 고아처럼
도심(都心)의 전주에 기대 서 있구나.
은하같이 빛나는 역사엔 밀려난 채
땀내 기름처럼 절인 아픈 다리로
망령처럼 빈 헛간을 지키다가
서울까지 올라온 고달픈 역정.
수숫단의 무게는 아득한 꿈속의 노을이다
빌딩이 내뿜는 근대화의 불빛에 눈이 부시고
난만히 꽃피는 우주선 아폴로의 신화를 엿들으며
뼈만 남은 앙상한 노구(老軀).
살아온 박물관 속의 박제(剝製).
철 잃은 슬픈 낙오자의 모습으로
무엇을 기다리나 빈 지게 하나

 

[시평]

‘지게’는 오랫동안 우리 일상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이던 물품이다. 온갖 물건들을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는 다니고 또 날랐기 때문이다.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것만이 아니라, 농사의 곡식 섬을 나를 때, 집안의 무거운 짐들을 나를 때마다 요긴하게 쓰이던 물품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서울역 인근에는 지게꾼들이 즐비하게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런 풍경을 심심찮게 보았다. 시골에서 상경하는 사람이 가지고 온 무거운 짐을 날라주고 품삯을 받기 위하여 앉아 있는 지게꾼들. 그들에게 역시 지게는 요긴한 삶의 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대화가 되고, 자동차가 홍수와 같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더구나 시골에는 경운기라는 기계로 된 운반도구가 나오자, 지게나 달구지는 이제 쓸모가 없는 물품이 되었다. 

이런 지게가 하나, 길 잃은 고아마냥 도심의 전주에 기대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시인은 오랜 회상에 잠긴다. 빌딩이 내뿜는 근대화의 불빛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철 잃은 슬픈 낙오자의 그런 모습으로. 무엇을 기다려도 어느 무엇도 이제는 찾아오지 않는 빈 지게.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어디 이 지게뿐이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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