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이 호국영웅 유해발굴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공: 국방부)

인터뷰| 이학기 유해발굴감식단장

16년간 9100여위 유해 발견
신원확인 113명… 1.2% 불과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중요”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유해발굴사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에 감사와 존경을 표할 줄 알고, 그래서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무장돼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직원들과 장병들에게 이 같은 마음을 늘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6.25전쟁 발발 66주년을 앞두고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단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 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숭고한 호국보훈 사업인 만큼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 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늘 다짐하고 있다”며 “이 땅 어딘가에 외롭게 묻혀 있는 호국용사들의 유해가 남지 않을 때까지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2000년 6월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육군본부에서 한시적으로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됐다. 유해발굴 과정에서 많은 국군전사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나 도장 등 유품들도 함께 나타났다. 2007년 국방부로 사업 주체가 전환되면서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다. 이들은 현재까지 약 9100여위의 국군전사자 유해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모두 113명(약 1.2%)이다. 올해는 고(故) 정성준 하사 등 5위의 유해를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모셨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발견된 전사자의 유해에 태극기를 덮어 예를 표하고 있다(왼쪽). 전사자의 유해를 메고 하산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제공: 국방부)

이 단장은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많이 지켜봤지만, 그중에서도 100번째로 신원이 확인됐던 고 김영탁 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김 하사는 지난 2013년 강원도 동해에서 인식표와 함께 발굴됐다. 인식표를 단서로 유가족을 추적해 유전자 시료 비교 분석을 한 결과 15개월 만에 신원이 확인됐다. 이 단장은 “80대가 된 여동생이 오빠(김 하사)의 유해를 감쌌던 태극기를 어루만지며 64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오빠가 이렇게 돌아와 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보람과 함께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부임 후 첫 호국영웅 귀환행사이기도 했고 100번째라는 특별함도 있었지만, 오빠가 입대 전에 마당에 심었던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오빠 생각이 간절했다는 할머니의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모든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 비교·분석으로 신원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율도 약 23% 정도로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단장은 유해발굴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유해 신원확인’을 꼽았다. 이름이 새겨진 인식표나 도장 등 신원 확인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유품이 유해와 함께 발굴되면 유가족을 역으로 추적해 찾기가 비교적 쉬운데 이런 유품이 발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이 단장의 설명이다.

이 단장은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 참여가 정말 중요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는 구강 내 타액을 채취하기 때문에 아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으니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 대상은 전사자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 친·외가 8촌까지며 거주지와 가까운 보건소나 보건지소, 인근 군병원, 유해발굴감식단을 방문하거나 유해발굴감식단 1577-5625로 전화를 주면 유전자 시료 채취 카드를 발송해 준다.

이 단장은 국민에게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6.25전쟁은 이미 지나간 과거지만 분명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국민은 유사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가는 끝까지 유해를 찾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와 국민 간의 약속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 같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언제든지 국민은 국가를 믿고 하나뿐인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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