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한국여자골프가 현재 세계 정상입니다. 그래서 대회 코스도, 각각의 홀도 세계 어느 골프장보다도,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게 배치했습니다.”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청라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기아자동차 제30회 한국여자오픈을 주최한 한 대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골프코스는 길고 멀었고, 그린 경사도와 핀 위치도 까다로웠다. 프로선수라도 버디는커녕 파세이브하기도 어렵게 세팅돼 있었다. 결국 주부골퍼 안시현이 4라운드 합계 288타, 이븐파를 기록하며 감격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장타소녀 박성현이 1오버파로 경기를 마치는 등 나머지 모든 참가 선수들이 오버파에 머물렀다. 한여름 땡볕이 18홀 내내 선수들을 괴롭힌 날이었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는 멋졌다. 필자도 모처럼 한 사람의 갤러리로 군중 속에 섞여 경기를 관전해보았다.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각자 닦아온 기량을 메이저대회에서 맘껏 펼쳐 보이는 젊음이 부럽기도 했다.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은 선수 부모 및 갤러리들과 대화도 잠시 나눠보았다.

“엘리트 체육으로 선수 몇몇이 세계 정상에 오르면 뭐하나요. 국민건강, 사회복지,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사회 체육이 정책적으로 활성화돼야죠.”

“한국은 프로선수 한 명을 키우려면 비용이 만만찮아서 부모 허리가 휘어요.”

“골프장 대중화가 안 돼 일반인은 라운딩하기가 부담스럽죠. 한 차례 라운딩에 1인당 20만원 내지 30만원의 비용이 드니 중산층도 자주 찾기 어려운 실정이죠.”

얼마 전 필자는 절친 셋과 경기도에 있는 한 퍼블릭골프장을 찾았다. 넷은 플레이의 내용이나 성적을 떠나 운동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릴 적 학교 뒷산에서 솔방울을 주워 던지며 야구 놀이를 했던 친구들과의 친목모임이라 화기애애할 수밖에. 카트에 음료수와 막걸리를 실은 채 홀을 돌다 버디나 파를 기록한 친구에게 축하의 잔을 건넸다. 경비 절약을 위해 캐디 없이 라운딩을 했다. 큰 불편은 없었다. 깔깔대고 장난도 치며 즐겁게 운동을 마친 우리를 더욱 흐뭇하게 한 시간은 비용결제 때였다. 반갑게도 그린피 요금에 저녁식사비가 포함돼 있었다. 저녁식사까지 포함해 총비용으로 1인당 9만여원을 지불했다.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갖는 학교동창 행사는 퍼블릭골프장에서도 충분히 할 만했다. 넷은 이런 대중골프장이 수도권 가까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회원제 골프장들이 경영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 자본잠식에까지 빠진 곳이 많다. 미국 등 해외엔 개별 소비세를 안 내는 곳이 많다. 한국은 골프장에 취득세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이 부과되는데 항목마다 중과세 대상이다. 일반 이용객도 골프장에 갈 때는 비교적 고율의 부가가치세 농특세 교육세 체육진흥기금 등을 내야 한다. 심각한 경영난 해소를 위해 세금 적은 퍼블릭으로 전환하는 골프장이 늘고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린피 요금의 대폭 인하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퍼블릭도 비용상 큰 차이가 없이 운영되다 보니 고객들 불만이 크다. 한국선수들이 해외에서 선전하면서 골프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골프라는 운동이 특권층을 위한 운동으로만 지목되거나 일반인에게 계속 위화감을 안겨준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니겠는가. 경기활성화와 실질적인 중산층 복지혜택을 위해서라도 골프장 및 일반 이용객에 대한 세금은 줄여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김해공항 확장키로’.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선정 용역결과가 21일 양비론으로 결정났다. 이럴 거라면 애초부터 선정 검토도, 시작도 말았어야 했다. 탈락지역의 실망 여론을 감안할 때 부산 가덕도건 경남 밀양이건 어느 쪽이 되더라도 후유증이 만만찮을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향후 정치권 풍향과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였다.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단견인지 모르나 지역별 유치전이 볼썽사납게 도를 넘자 결국 소신 있는 선택보다는 파국을 막자는 정치적 고육지책으로 정리했는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크게 비운 정부, 대도(大道)를 걸어가는 정치라고 말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거론되는 개헌론도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집권을 위한 마키아벨리즘적 차원의 것인지 불분명하다. 경기흐름마저 좀처럼 전환의 물꼬가 터지지 않아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급전직하다. 대중골프장 활성화 조치마저 사심 없이 국민 편에서 깔끔하게 시행하지 못해내는 정부 정책이다. 그러니 무어라고 하건 국민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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