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는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이 46세 때인 1881년에 발표한 사회풍자소설이다. 12~13세기 북유럽에서 전해 오던 '왕자와 시종'이라는 전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등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16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권력자가 지녀야 할 진정한 덕목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영국의 왕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와 빈민가의 톰은 같은 해 같은 날 출생한다. 왕자를 동경하던 톰은 어느 날 왕자가 사는 궁전에 가게 된다. 문지기에게 두들겨 맞는 톰을 본 에드워드는 톰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가 톰의 이야기를 듣는다. 에드워드는 톰의 삶에 흥미를 느끼고, 톰과 옷을 바꿔 입고 궁 밖으로 나간다. 에드워드는 톰의 아버지한테 붙들려 빈민가로 끌려가고 이후 수차례 죽을 고비를 맞는다.  

진짜 거지 톰은 궁에서 왕자 노릇을 하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관식 날 톰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지기 직전 에드워드가 나타나 행방이 묘연한 옥새가 어디 있는지 말하면서 극적으로 그가 진짜 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왕이 된 에드워드 6세는 톰에게 육아원 원장 자리를 주고 가혹한 법률들을 폐지한다. 백성들의 밑바닥 삶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에드워드 6세는 왕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왕자와 거지’는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과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극단적 삶을 살아가던 두 주인공의 엉뚱한 해프닝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현실의 괴리,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 권력의 속성과 허위 등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탐색이 이뤄지는 대작이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많이 읽혀지지만, 세대를 초월한 공통의 울림이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오여의 모험’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위선과 부덕함을 날카롭게 풍자한 트웨인은 미국 문학과 문화의 개척자로 추앙받는다. 그 역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거칠고 억센 흑인 노예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랐다. 그러면서도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도 감추지 않았다. ‘도금시대’에서 그는 “어떤 사람은 계급을 숭배하고, 어떤 사람은 영웅을,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숭배한다. 그러나 모두는 돈을 숭배한다”고 썼다.

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어느 재벌가 사위 이야기가 ‘왕자와 거지’를 떠오르게 한다. 신분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으나, 소설 속 ‘거지 톰’의 궁전 생활처럼 자신 역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그래서 몹시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남자 신데렐라라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던 세상 사람들은,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현실 속의 ‘거지 톰’들로서는 참 애매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 이야기처럼,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두고 돌아서면서 “분명히 포도가 덜 익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여우처럼, “거지처럼 살더라도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야”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거지처럼 살면서 마음 편히 사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들 모두가 진정으로 ‘돈을 숭배’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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