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책 ‘한국기독교흑역사’
일제 강요 때문이라고? ‘자발적’ 신사참배 정황
한국전쟁 당시 민간학살에 가담한 ‘예수쟁이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가나안’ 성도 현상은 한국기독교의 위기를 방증하는 하나의 징표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은 갖고 있기에 교회는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한다. 한국기독교는 ‘가나안’ 성도들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고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교회에 나가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가나안(교회 ‘안 나가’를 뒤집은 표현)’ 성도들이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도대체 이들은 왜 자신을 양육해줄 목회자와 동고동락할 동료 신앙인들이 있는 교회를 등지고 홀로 신앙을 하겠다고 결정했을까. 이에 대한 수많은 원인이 분석되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일 것이라는 게 교계의 자성적인 목소리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한국교회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뒷받침할만한 설득력 있는 증거물들이 최근 한 역사학도의 수집 및 저술로 빛을 보게 됐다. 학창시절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측 교회와 학생신앙운동(SFC)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나 그는 현재 ‘가나안’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역사학도이자 저술가인 강성호 씨가 출간한 ‘한국기독교흑역사-열두 가지 주제로 보는 한국개신교 스캔들’를 통해서다.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강 씨는 개신교가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한국사회의 주류 종교로 정착하게 됐는지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에 주목했다. 한국교회 일부의 역사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나 큰 사건들이 많다. 그는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역사를 집중 조명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먼저 신사참배 문제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비판이 일 때마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없이 신사참배를 한 것”이라고 하는 변명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댔다.
일례로 장로교회가 1938년 총회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기 이전에 23개 노회 중 17개가 먼저 신사참배를 하고 있었고 3개 노회는 평양에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신사참배 결의를 주도해 자발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954년 장로교회는 총회를 열고 이미 진행해왔던 신사참배에 대해 ‘일제의 강압에 못이긴 결정’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범한 것’이라며 결의를 취소한다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결국 자신들의 배교행위의 책임을 일제강점기라는 외부현상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신도침례부터 동방요배, 황국신민서사 제창, 전쟁협력 등 한국교회의 부일협력행위는 다양했다.
친일파에 한국교회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돼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1948년 친일파 처단을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된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통해 밝혀진 친일파 명단 중 한국교회 지도자는 교파별로 장로교 6명, 감리교 7명, 안식교 5명, 확인불가 7명 등이었다. 그러나 단 64명에 대한 기록을 조사해 나온 25명이었으며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들은 비행기 헌납운동이나 교회종 헌납 운동 등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언론매체와 출판물을 통해 징병제를 찬성하고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일부는 조선총독부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친일단체의 간부로 활동했다. 또 독립운동자와 신사참배 반대자, 반일 설교 목회자 등을 일본경찰에 밀고했다.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로 알려진 전필순 목사가 돌연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사례도 언급됐다. 1949년 조선일보에 “일본기독교와 결부시켜 구약을 배격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황민화운동에 헌신케 하고 대동아 전쟁 중 비행기를 헌납하는 등 헌금과 헌납으로 이름이 드높았다”고 기술된 전 목사는 반민특위 해산 후 돌연 장로교 총회장으로 선출되고 전 목사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지게 됐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올랐던 정춘수 목사는 친일성이 밝혀져 충북 청주 3.1공원에 세워진 충북 출신 민족대표 6명 동상 중에서 결국 철거를 당했다. 그는 전시체제기에 감독으로 취임해 전쟁협력단체의 간부로 참여해 감리교회의 전쟁협력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던 자들이 ‘예수쟁이들’이었다는 한국교회의 감추고 싶은 치부도 일부 들춰냈다. 영락교회 김모 장로는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 모슬포에서 220명의 도민을 총살한 부대를 지휘했다. 같은 교회 장모 장로도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에 연루됐다. 한국전쟁 때 전국을 다니며 어린이와 부녀자 등 500명을 학살하는 등 ‘백두산 호랑이’로 이름을 날렸던 김종원도 사실 교회 집사였다. 서북청년회에 가담해 국민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임모씨는 돌연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이러한 해방 초기 기독교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정치권력에 발맞춰 부정선거에 협력하고, 정부 권력을 추켜세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등 한국교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증오를 낳은 반공운동, 교회와 건물을 짓기 위해 돈을 쫓아간 목회자들, 무리한 교회 건축이 낳은 ‘이순임 사건’ 등 교회의 대형화가 낳은 병폐, 타 종교에 대한 무례함, 기독교기업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이순임 씨 사건은 교회 빚을 갚기 위해 눈을 팔겠다고 선언해 교계가 미담사례로 회자한 사건이다. 다른 한 교회 신도는 교회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 신장을 팔았다. 그런가 하면 1988년 장모 목사는 교회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두 장로를 총으로 쏴 살해하기도 했다.
한국교회가 이 책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책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역사에 등장한 기독교인들의 부패한 행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금권선거, 횡령, 배임 등 돈문제에 호화 건축, 표절, 성추행 등 목회자와 기독교인들의 범죄가 사회면을 끊임없이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교회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는 미래를 위해 ‘한국기독교흑역사’를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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