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주인공인 주사랑공동체 이종락(오른쪽에서 두 번째) 목사가 지난 21일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의 ‘베이비박스’ 조명

“베이비박스 열리면 ‘띵동’ 울려
“아이가 뉘였구나” 뛰어 나가
7년 동안 데려온 아이 952명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너무도 막막했던 시기에 우연히 목사님을 알게 됐어요. 목사님이시라면 우리 아들이 잘 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총’은 태명입니다. 이름도 은총이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세월이 흐르더라도 아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이 아이는 선천성 안면 기형이고,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찾지 말아주십시오. 용서해주세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 “질병을 꼭 이겨 내, 기리야”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두 번째 편지글과 함께 ‘베이비박스’에서 ‘기리’를 안았다. 선천적 기형 때문에 신생아인 기리는 마취를 연거푸 네 번이나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육신의 질병이 너무도 심해 이 목사는 자신의 이름 성 ‘이’에 이름 ‘기리’를 붙여서 아이 이름을 ‘이기리’로 지었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기리는 계속되는 마취와 수술을 이겨냈다. 이 목사가 지난 2009년 설치한 베이비박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기리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놓인다. 올해까지 햇수로 7년. 지난 5월 20일까지 이종락 목사에게 맡겨진 아이는 모두 952명이다. 현재 이 목사가 보살피고 있는 아이는 15명이다. 나머지는 구청에서 보육시설로 데려갔다.

이 목사는 자신을 찾아온 모든 엄마의 아이를 받지는 않는다. 먼저 아이의 엄마가 키울 수 있도록 상담을 하고, 도움을 준다. 이 목사는 찾아오는 미혼모들의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어떤 십대 미혼모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아이를 맡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취직 할 때까지만, 또 다른 미혼모는 방을 구할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이 목사에게 사정하기도 했다.

어떤 미혼모는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찾아왔다. 어떤 이들은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공중화장실이나 여관, 산, 친구 집 등에서 아이를 낳아 탯줄도 자르지 못한 채 하혈을 하며 이 목사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들은 왜 주변으로부터 따뜻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이 목사를 찾아왔을까.

▲ 영화 ‘드롭박스’ 스틸 컷.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박스에 뉘인 아이를 안고 있다. (제공: 필름 포럼) ⓒ천지일보(뉴스천지)

◆“체면 때문에 미혼모와 아이를 사지로”

이 목사는 우리 사회의 ‘체면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미성년자가 아이를 갖거나 장애아일 경우 주변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하고, 아이의 엄마는 모멸감과 수치스러움으로 떳떳하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혼모, 특히 십대 미혼모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우울증을 겪으며 급기야 일부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나 쓰레기통에 아이를 유기해 목숨을 빼앗는 참극까지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목사는 이 미혼모들에게 칭찬과 위로를 통해 치유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그 약자들의 아픔·고통·눈물에 대해 이 사회가 관심이 없고 나라가 책임감이 없다”며 “사람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죽어가는 이 현실 앞에 어떤 누구도 대안을 세우고 있지 않고 있다. 무관심 무반응 무대책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한탄했다.

이 목사는 차가운 바닥에 버려져 목숨을 잃을뻔 한 아이를 발견한 후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베이비박스를 고안했다고 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이 제거된 ‘베이비박스’에 뉘여 놓으면 이 아이를 데려다가 보살피겠다는 뜻이었다. 이미 서양에서는 베이비박스를 곳곳에 설치해 길바닥에서 죽는 아이가 없도록 나라가 나서서 조치를 한 사례도 있다.

▲ 영화 ‘드롭박스’ 스틸 컷. 베이비박스에 담긴 아이. (제공: 필름포럼) ⓒ천지일보(뉴스천지)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고?”

그러나 이 베이비박스가 설치되자 ‘유기를 조장한다’는 등 부정적인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말이 실무자가 아닌 정부의 관료에게서 나온 말이 여론화 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탁상공론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장소에서 죽어가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 공중화장실, 여관 등 별의별 곳에서 죽어가고 있다”며 “베이비박스를 설치해서 키우려는 아이를 일부러 데려왔다는 증거를 대보라. 찾아오는 미혼모들 중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오히려 본래 가정으로 돌아갈 수도 있도록 도와준 아이가 48명, 베이비박스에서 데려왔다가 상담을 통해 다시 원래 집으로 데려가서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 78가족이라고 했다. 이 중 28가족은 졸업했고, 50가족만이 기저귀와 생필품과 병원비·방세 등을 지원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기거할 수 있도록 미혼모룸도 조성했다고 밝혔다.

▲ 영화 주인공인 주사랑공동체 이종락(오른쪽에서 두 번째) 목사가 지난 21일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배급사 필름포럼 관계자와 이종락 목사, 양아들 이루리군, 홍보대사 소이. ⓒ천지일보(뉴스천지)

◆영화 ‘드롭박스’ 외면한 관람객들

베이비박스에 대한 이종락 목사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박스’는 지난 19일 개봉해 전국 관객을 맞고 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드롭박스는 30여년 전 아들이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을 계기로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기로 결정한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의 인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이종락 목사는 지난 19일, 21일, 27일 영화가 상영된 극장을 찾아가 관객들과의 대화를 갖고 ‘베이비박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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