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작정을 하고 온 듯하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탓일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듣노라면 진중하지 못하고 어설프다. 뭔가에 쫓기듯 조급하다는 생각도 든다. 발언의 내용도 간명하지 않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설득력도 떨어진다.

그동안 정치적 발언을 극도로 피했던 반 총장이 이번에는 한국에 오자마자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을 찾았다. 정치적 발언을 작정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보를 보일 반 총장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선후보 여론조사에 자신의 이름조차 빼달라고 했던 반 총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국민 앞에 내놓은 그의 발언은 다소 실망적이다. 반 총장이 작심하고 내놓은 발언의 핵심이 무엇인지 지금도 생각할수록 헛갈린다.

국민의 눈높이와는 멀었다

반기문 총장의 관훈클럽 간담회 요체는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4.13총선에서 여권 대선주자들이 초토화되자 반 총장에게 거는 지지층의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총장은 이런저런 수식어를 대면서 내년 1월이나 돼야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정말 아직도 대선 출마를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관훈클럽 간담회는 굳이 왜 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확고한 의지도 없이 내년 초 귀국해서 그 즈음 대선 출마를 결심하고 그해 말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일까. 한국의 대선을 너무 쉽게 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아니라면 반 총장의 이런 발언은 적절하지 않았다.

실제로 반기문 총장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수준이 훨씬 더 낮으며,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고 특히 국민을 ‘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깜짝 놀랄 발언이다. 마치 후진국 대한민국의 국민을 언론이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식의 과거 1960~70년대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국민은 계도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언론의 역할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지 그들의 입맛에 따라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어찌 이런 생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표를 얻겠다는 것일까. 어쩌면 반기문 총장이 지금의 우리 국민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반기문 총장은 여태껏 북한을 방문하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대한민국 출신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분단 조국의 반쪽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의 분열상도 창피하지만 반 총장의 이런 외교 역량이 더 창피한 것은 아닐까. 혹 대선 출마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남은 임기에 북한을 방문하려고 또 얼마나 힘을 쏟을지를 생각하면 그 조급함과 초라함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반 총장은 관훈클럽 간담회 이후 언론에서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고 보도하자 이마저도 언론이 과잉 확대 해석했다고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관훈클럽 간담회 같은 건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언론인과 국민을 바보로 보는 듯한 반 총장의 인식이 심히 걱정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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