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박종국(1948~  )

씨앗의 문을 열자
삶과 죽음이
얼마나 농축되어 있는지
빛깔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맨발로 작두날을 타고 있는
무당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떡시루를 이고 펄펄 뛰는
굿판 같은 빛깔이다

[시평]

삶과 죽음의 그 경계를 이루는 지점을 빛으로 따진다면 과연 어떤 빛깔일까. 삶과 죽음이 농축되어 있는 빛깔, 어느 빛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빛깔이 아니겠는가. 씨앗은 삶과 죽음이 모두 함께 하고 있는, 그 원초적 핵심이 되는 것. 이제 마악 새로운 삶의 발아를 시작하는 곳. 지금 막 무한의 시간을 건너 새로운 시간의 문을 열고자 하는 것, 이가 바로 씨앗 아닌가.

무당, 사람과 신의 그 경계, 삶과 죽음의 경지를 넘나드는 사람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삶과 죽음의 그 경계에서 때로는 시퍼런 작두를 타고 그 위를 넘나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작두날 위에서 떡시루를 이고 뛰어오르기도 하는 무당. 그 무당이 펼치는 한판 굿. 삶과 죽음의 경계로 넘나드는 그 굿판의 빛깔이 있다면, 바로 씨앗이 지닌 삶과 죽음이 농축된 그 빛깔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이란, 어쩌면 이 삶과 죽음이 농축된 그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삶과 죽음의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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