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 장순휘

1
그 날은 이역만리 독일로 가는 날
김포공항의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차마 놓을 수 없었던
생이별의 눈물은 꽃으로 갓 핀 우리들에게
살을 에는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웠습니다

보릿고개 궁핍은 배고픔의 고통으로
잘 살아보려는 열망은 독일인들 두려울까요
글씨도 말도 모른 채 떠나는 그 먼 길
비행기창 밖으로 산하가 가뭇거릴 때서야
가슴 한 구석에서 걷히는 눈물의 안개였습니다

2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첫 발은 두려움이었고
병원의 첫 출근은 손짓발짓의 답답함이었으며
통하지 않는 말에는 낯선 당황함이었지만
땀 흥건히 온 몸으로 해내는 성실함과
상냥한 미소와 친절이 독일 사회의 경탄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병동에서, 밤에는 독일어를 배워가며
파김치된 몸을 일으켜 마르크화를 벌어서
고향 계신 부모형제를 위해 보낼 때마다
우리들이 왜 여기에 이 자리에 있는가를 되새김하며
꼭 잘 살겠다는 가족사랑으로 그리움을 이겨냈습니다

3
때로는 돌아온 숙소에서 기다리는 것이
혼자라는 외로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부어스트의 메스꺼움, 느끼한 케제의 역겨움
아우스랜더라는 비아냥의 서러움이었지만
눈물짓기보다 이겨낸 억척스럼에는 조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낮없이 뛰던 병동에서 청춘의 봄이 피고 질 때
투박한 독일청년은 이국의 사랑으로도 다가와 있었고
언어장벽은 한국인의 정으로, 정으로 녹이며
힘겨운 독일 환자의 곁을 천사처럼 지켜갈 때
우리는 독일에 아름다운 한국과 한국인을 심었습니다

4
인생의 하루하루가 어느새 아마득한 50년 역사가 되었고
독일에 뿌린 작은 씨앗들이 건강한 나무로 자란 오늘
푸른 숲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들이
고단한 시절 청춘의 꿈을 채색하고 우려낸 어울림으로
코리안 엔젤의 은백색 면류관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습니다

반세기 전 가난에 아픈 조국을 치료하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을 향했던 우리들의 소망이
대한민국 경제의 마중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자랑스런 명예와 긍지로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들은 영원한 코리안 엔젤입니다.

장순휘
육사 38기, 정치학 박사, 청운대 교수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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