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죽을 때까지 해 먹는다”는 말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나머지 권력자들도 대부분 사망해야 권력에서 물러나는 것이 오늘 북한의 정치권력이다. 북한은 20일 전(前) 노동당 국제비서 강석주의 부고를 발표하면서 그가 식도암으로 사망(76세)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최룡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정무국 부위원장이 장의위원장이 됐음도 보도했다. 강석주는 누구인가?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 외교의 정상에서 북한의 국제문제를 총괄해온 실질적 외교정책의 컨트롤타워였다. 물론 중요한 정책 결정은 김정일·김정은이 하지만 그 실무적 판단은 전적으로 강석주의 몫이었다.

강석주 전 비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외교부에서 제1부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대미외교를 총괄한 인물이다.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의 회담에 배석했고, 같은 해 10월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 특사와 북미 기본합의서에 직접 서명한 핵문제 초기 협상의 주역이다. 지난해 8월 이후 건강상 이유로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던 그의 사망에 따라 북한 외교 진용은 ‘리수용-리용호 투톱체제’로 새로 재편됐다.

노동당 정무국 국제담당 부위원장직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리수용 전 외무상과 리용호 신임 외무상을 정점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외교 진용이 짜여진 것이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인 김계관 제1부상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이날 발표된 ‘강석주 국장 및 국가장의위원회’는 최룡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장의위원장으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등 50여명으로 구성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강석주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며 애도를 표했다. 내각 총리를 제치고 최룡해가 장의위원장이 된 것도 특징이다.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53명과 지난해 12월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국가장의위원 70명을 비교 분석한 결과 먼저 당 서열 6위였던 최룡해 당 비서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진입하면서 서열 2위로 뛰어 올랐다. 강석주 당 비서를 대신한 리수용 외무상도 정치국 위원과 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직위가 상승하면서 기존의 당 비서들을 제치고 서열이 6위로 급부상해 새로운 실세가 됐다.

특히 리용호 외무상(서열 21위)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서열 51위)으로 새로운 북한 외교라인이 형성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한 김평해 당비서도 지난해 12월 서열 17위에서 7위로 올랐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당 비서와 정치국 위원으로 직위가 상승해 서열이 52위에서 10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책임을 지고 있는 리만건 군수공업부장이 정치국 위원과 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서열 156위에서 29위로 급상승했고 리병철 군수공업부 부부장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올라가면서 서열이 38위에서 24위롤 올랐다. 한때 ‘처형설’이 나돌았던 리영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은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면서 서열 26위를 마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열 8위였던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은 이번에는 15위로 낮아졌고 서열 9위였던 총참모장직은 14위로 밀려나는 등 상당수의 군부 엘리트들이 이번 명단에서 제외돼 눈길을 끌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금고지기인 전일춘 39호 실장도 40위에서 48위로 다소 밀려났다.

이밖에도 지난해 12월에 명단에서 빠진 리재일 당부부장이 다시 서열 45위로 나타났고 서열 18위인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 19위 김능오 평북 당위원장, 20위 박태성평남도 당위원장을 제외한 도 당 위원장들은 지난해와는 달리 이번에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역시 평양의 정치권력은 아직 확실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출렁거리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최고인민회의를 한 번 더 소집해 다시 정권기관을 재정립해야 북한의 김정은 체제 권력구도는 제자리를 찾을 전망이다. 당초 과감한 세대교체를 기대했던 일각의 기대는 물거품 된 지 오래다. 결국 사망해야만 자리에서 물러나는 북한의 권력자들은 아직 수두룩하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은 ‘세습정권’의 딱지를 떼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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