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졸업 시즌을 맞아 우울한 소식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인터넷을 달구며 줄줄이 쏟아져 나온 소식들은 잘못된 졸업식 문화였다.

알몸으로 인간 피라미드를 쌓게 하거나 여학생의 옷을 찢고 머리에 케첩을 뿌리는가 하면 남녀 학생들이 속옷 차림으로 해변을 누비기도 했다. 엄격한 규율과 입시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치더라도, 정도가 심했다.

이번에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청소년들의 ‘졸업빵’이라는 것들에는 대부분 심각한 성적인 위해나 악의가 담겨져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아이들은 옷을 벗기는 등 성적 육체적 학대가 분명한 행동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렸고 설날이 다가왔다. 온 가족이 안방에 모여 있던 설날 연휴 첫날, 느닷없이 TV에서 이상한 장면 하나가 튀어나왔다.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포르노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었다. 사랑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TV 속의 그들은 추했으며, 사람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 드라마의 작가가 김정수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2008년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작가상, 2002년 백상예술대상 극본상, 2001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작가부문), 1998년 제11회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의 대본을, 1980년부터 12년 동안 800회나 집필한 베테랑이다. <엄마의 바다> <자반고등어> <그대 그리고 나> <그 여자네 집> 등 그간의 집필 이력을 봐서라도, 불륜과 패륜, 막말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와는 분명하게 선을 그을 것으로 기대됐다.

자극적이지 않고도 따뜻한 언어로 소소한 행복을 그려내는 가슴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한 이 드라마는 그러나 어이없게도 막장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쉽게 편승해 버린 느낌이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는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에서 남자 배우들이 윗옷을 벗은 채 기합을 받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인터넷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드라마 ‘파스타’ 속 진정한 복근남은 누구일까, 노민우 현우 최재환의 몸매 전격 공개, 라고 떠들었다.

막장 드라마의 대표 메뉴인 막말도 이제는 장르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부산과 광주·대구·대전·강원 등 5개 지역 사무소에서 지난해 11월 9일부터 올 2월 4일까지 지역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언어 사용에 관해 조사 분석했더니 비표준어, 비속어 등의 사용사례가 엄청난 것으로 조사됐다.

총 53개 프로그램에서 비표준어 2276건, 반말 481건, 비속어·은어 176건 등 총 3111건이 지적됐다. TV(19개 프로그램)의 경우 비표준어 1181건, 반말 217건, 비속어·은어 111건 등 총 1599건이었다. 특히, 비표준어와 비속어 등이 포함된 자막이 빈번히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라디오(34개 프로그램)의 경우 비표준어 1095건, 반말 264건, 비속어·은어 65건 등이었다. 특히, 불필요한 외래어가 빈번히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의 환경과 ‘졸업빵’이라며 죄의식 없이 친구나 후배들에게 성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며 키득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우리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꾸짖을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몹시 부끄럽고 미안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