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관람객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상주 북장사 괘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화면에 다 안 들어가네.”

높이 13.3m에 달하는 초대형 불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바로 1688년에 제작된 상주 북장사 괘불(보물 제1278호)이다. 경상북도 상주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이 괘불의 진본이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렸다. 상주 북장사 주지 스님은 지난 1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이 괘불은 사본을 만들어 큰 행사 때 전시하고 있다”며 “진본 전시는 십수년 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괘불’이란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할 때 걸어두는 대형 불화를 말한다. 북장사 괘불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가르침을 베푸는 모습을 담고 있어 북장사 영산회괘불도라 불린다.

상주 북장사 괘불은 부처가 서 있는 모습을 영산회괘불도에 처음으로 담아 의미가 크다. 이보다 앞선 다른 영산회괘불도에선 설법하는 부처가 앉아 있다. 부처는 왜 앉은 모습에서 서 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됐을까.

이는 야외 법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부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야외 의식에 맞게 그림 속 부처도 점점 커지게 됐다”며 “이 괘불도는 지금까지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것 중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조선의 사찰에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이 법당 밖 마당에서 진행됐다. 이 야외 의식에선 불상을 대신해 괘불이 사용됐다. 괘불은 야외 의식이 활성화되면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세로로 긴 형태를 취하게 됐다. 그러면서 점점 더 큰 크기의 부처가 담겨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서 있는 석가모니가 그림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서 있는 부처의 도상은 북장사 영산회괘불도 이후 화승을 통해 조선 후기 경상북도 곳곳에 전승됐다. 김룡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640호), 용문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445호) 등이 대표적이다.

북장사 괘불도는 화려한 채색과 꼼꼼한 세부묘사가 인상적이다. 불교 신도와 승려 165명의 시주와 후원으로 제작된 이 괘불에선 부처가 화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주위엔 여섯 보살과 10명의 제자 등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다. 아래쪽에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천왕도 그려져 있다.

이 괘불 속 석가모니는 오른손이 그려지지 않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이를 두고 한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상주지역에서 간행된 읍지(邑誌)인 ‘상산지’에 따르면 당나라 스님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스님은 그림을 그리는 사흘간 문을 닫은 채 음식도, 사람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스님이 문틈으로 이를 엿보았고 방 안에 그림을 그리는 당나라 스님 대신 푸른 새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스님이 이를 이상히 여겨 계속 보고 있자 이 새는 갑자기 날아가 버렸고 방에는 한쪽 귀퉁이가 완성되지 않은 이 그림만 남게 됐다는 설화다.

이 괘불은 기우제 때마다 비를 내려줬다는 전설도 있어 지금도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상주 북장사 괘불은 오는 11월 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 불교회화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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