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1962년 첫 자동차 판매를 시작해 글로벌 판매 5위를 기록하고, 올해 4월 54년 만에 누적판매량 1억대를 돌파했다. 현대차그룹은 국민이 먹여 살린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산과 판매에서 국민의 참여가 많은 기업이다.

하지만 오너가의 과도한 급여와 퇴직금 논란, 주가를 하락시킨 한전부지 고가매입 사건, 횡령·배임 유죄판결 등 어두운 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기업은 많은 사람이 협력해 이룬 결정체이기에 한 개인만을 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현대차가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민기업으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그간의 명(明)과 암(暗)을 기획 연재한다. 역사는 거울과 경계가 된다.

 

[현대차 핸들(MDPS) 문제 등 전문가에게 듣다]
안전 직결 중대 문제도 ‘쉬쉬’
“정부도 회사도 뒤늦게 리콜”
“미국처럼 ‘징벌적 배상’ 필요”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억지는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회사가 거짓말하고 변명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행위다. 글로벌 회사라면 믿음이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완성차 생산부문에서 세계 5위의 회사가 됐지만, 소비자 대응 측면에선 글로벌 브랜드답지 못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한 달여 기간 동안 자동차 분야의 교수, 정비 전문가, 소비자보호 전문가 등을 직접 만나서 들은 말들이다.

최근 현대차는 조향장치(운전대 부분)인 전동식 파워스티어링휠(MDPS 또는 EPS)의 무거워짐, 쏠림 현상 등에 대해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소홀히 대응한다’는 언론의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가들을 만나 해당 문제에 대해서 들어봤다.

▲ 지난 3월 한 달간 자동차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자동차정비 전문가 박병일 명장은 중대결함을 놔두고 값싼 부품만 교체하는 회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분야 소비자보호 전문가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미국과 같은 '징벌적 배상' 등의 법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중요 부품에 대해서 비용을 아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중대결함 모르쇠… 값싼부품만 교환?

 

현대차는 조향장치 결함 문제로 핸들이 갑자기 무거워져 조작이 어렵거나,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쏠리는 현상이 있어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현대차는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임에도, 리콜을 통해 해당 문제가 있는 전체 차량에 대해 시정을 하기보다는 ‘값싼 부품만을 무료로 교환해주는 방향’으로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자동차 정비 전문가인 박병일 명장은 “핸들이 무거워지는 문제는 조향장치에 장착된 모터의 토크센서 불량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리콜을 통해서 해당차량 전부에 대해 부품교체를 해줘야 하는데도 문제가 생긴 경우만 해주고 나머진 놔두고 있다. 그럼 그 차들이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것인데 업체는 양심이 있는가”라며 성토했다.

이어 그는 “만약에 해당 문제로 인해 차량이 수렁에 빠진다면 업체 측은 운전자의 부주의로 몰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며 예상되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토크센서 불량 문제는 운전자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부품으로 리콜이 시급한 상황인데, 현대차는 원가 800원 내지 1000원정도 하는 플렉시블 커플링에 대해서만 무상교체한다고 했다”면서 “더구나 자비로 수리한 이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리콜’도 아니고 일부 차량에 한정되는 ‘무상 교체’에 그쳤다”고 말했다.

조향장치와 타이어 축을 연결하는 중간 부분에는 모터가 달렸다. 이곳에선 핸들의 조향에 따라 토크센서가 이를 인지하고 모터를 구동해 타이어를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현대차가 무상 교체를 한 플렉시블 커플링도 있다. 이는 핸들축 모터 부분에서 충격 등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며, 핸들이 무거워지는 것과는 연관이 없다.

결론적으로 현대차는 값싼 플렉시블 커플링 불량문제 차량에 대해서만 무상 교체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자가 전문가들을 만난 시점의 한 달 후인 지난 4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현대차 2011년형 YF쏘나타 17만여대에 대해 MDPS 문제로 리콜 조치했다. 이어 국토교통부도 지난달 18일 동일 문제로 현대차 YF쏘나타와 K5 차량 등 2만여대를 리콜 명령했다. 국토부는 해당 차량의 조향장치 전자제어장치(ECU) 회로기판이 코팅 불량으로 수분이 들어가면서 기판 합선이 발생해, 운전대가 무거워져 조작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업체와 정부는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미국에서 리콜 조치가 있은 후 뒤늦게서야 국내 리콜을 실시한 것이다.

▲ (왼쪽부터) 현대차의 전동식 파워스티어링휠(MDPS)의 모습. MDPS의 핸들 축 중간에 달린 모터(왼쪽 빨간 동그라미 부분) 내부에 있는 토크센서. (핸들) 조향에 따라 토크센서에 인식되고 인식된 정보는 전자회로를 통해 모터를 돌리도록 명령이 내려지며 이를 통해 바퀴가 움직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법 강화하고 회사 태도 바꿔야”

 

20여년간 한국소비자원에서 자동차 전문조사위원으로 근무했던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정부의 기준 강화’와 ‘리콜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업체의 ‘소비자 대응 태도’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현대차의 MDPS 문제에 대해 미국은 소비자의 불만 접수 후 발 빠르게 리콜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미국의 기준이나 법이 우리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든 해당 회사든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바꿀 의지가 약하다”고 말했다. 이에 “해당 회사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문제가 있어도 리콜을 안 하고 버틴다든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앞서 칼럼을 통해서도 “미국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리콜의 잣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며 “미국 NHTSA에서는 전문가들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결함여부를 확실히 판가름해주고, 자동차회사에서 리콜 사항인데도 숨기거나 대충 넘어 가려고 하면 ‘징벌적 배상’까지 하기 때문에 소상히 실토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리콜을 할 상황에서도 무상 수리 수준으로 그치고, 이것 또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집단으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언론에 노출이 되면서 이슈화가 돼야 마지못해 한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는 소비자 불만에 대한 대처 방법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를 위해 바로 리콜을 해서 교체하면 되는데 여론이 일고 나서야 뒤늦게 나서니 소비자로부터 ‘흉기차’라는 비판의 소리도 듣는다. 아직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서의 마인드가 약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생산성 문제 때문에 고급차가 아닌 일반 차량에는 중저가 부품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소중하기에 (조향장치 등과 같은) 중대한 부품은 투자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부품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자동차 급발진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현대차를 비롯해) 자동차 급발진 사고 문제가 아직도 진행형인데, 제조물 책임법으로 들어가면 (회사 입장에서) 사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회사들은 수면 위에 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있다”며 “앞으로 자율주행자동차도 나오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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