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누구나 같은 그리움, 같은 슬픔, 그리고… 같은 사랑을 하고 살아간다. 겉모양만 다를 뿐 그 ‘무게’는 같다.

1억 원 고료를 수상했다고 하니 꽤나 감각적이고 파격적인 소설이 나왔나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평범하다 못해 절제된 언어들…. 독특한 문장도, 튀는 언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슬프다. 절제된 슬픔은 더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가슴으로 아니… 온몸으로 울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치도록 슬픈 대목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공지영 작가의 말이 전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것은 마치 먹먹한 슬픔을 도려내어 사진첩에 넣어놓고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스라이 피어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새로운 이끌림을 창조해낸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그리움과 슬픔은 나와 별개의 문제인 듯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맞아가는 대필 작가의 이야기다.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지난 세월을 그런대로 살아 낸 ‘나’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만다. 사별 후, 이렇다 할 삶의 의욕은 없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남의 글을 대신 써 주는 대필업을 맡게 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다지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 불과하니까….

‘나’는 가끔 업무전화가 오는 것과 지인이 찾아오는 것을 빼곤 늘 혼자다. 치열한 삶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생의 변두리를 맴돌다가 일이 생기면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나’는 항상 세상을 관찰한다. 할 일이 없으면 다른 누군가를 미행하거나, 공간에 놓여 있는 물건이 생물처럼 꿈틀대며 움직이는 환상을 꿈꾼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 횡단보도에 멍하니 서 있는 회사원… 모두 죽은 사람이지만 그에겐 관찰을 위한 대상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어 가며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 낸다. 가끔 대필업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전부 다 듣게 된다. ‘나’는 그런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진부함과 인간의 내면에 깃든 비열함을 하나하나씩 토해낸다. 물론 ‘무덤덤’하게 말이다.

이 정도면 세태소설로서도 훌륭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다른 각도에서 엇물리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의 편린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나’의 과거는 온통 자괴감으로 물들어 있다. 열등감 때문에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켜 일을 그만두기 일쑤고 능력도 없다. 그러나 항상 ‘나’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 무능한 남편에게 단 한 번도 원망을 던지지 않은 아내… 모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내’의 사랑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치유’는 늘 따라다닌다. 그것들은 항상 이명처럼 웅웅대다가 이내 마음속의 얼룩을 닦아낸다. 때로는 내 상처를 닦아준 ‘그’에 대한 아련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러나 원하는 만큼 사랑을 줄 수 없어서, 그래서 우리는 늘 슬프지만 아름답다.

임영태 지음 / 뿔(웅진문학에디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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