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박 4일간의 이란 순방을 마치고 지난 4일 귀국했다. 그간 굳게 닫혀 있던 이란 시장이 지난 1월 경제·금융제재 해제와 함께 열리면서, 이란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세계경제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금번 순방을 계기로 미지의 나라 ‘이란’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란은 정치와 종교가 교차하는 특이한 정치구조와 찬란한 페르시아의 역사·문화 등을 지닌 ‘알면 알수록’ 신비한 나라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다녀온 이란은 어떠한 나라인지 살펴보고, 나아가 이번 순방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효과에 대해서 진단해보고자 한다.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잭팟’ ‘마지막 블루오션’ ‘제2의 중동붐’.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함께 이란에 이 같은 수식어들이 붙었다. 핵 협상 타결로 지난 1월 빗장이 풀린 뒤 세계 각국은 이란에 잇단 러브콜을 보냈고, 한국도 이 물결에 동참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 ‘이란’에 세계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랍국가 틈바구니 속 이란

이란은 아랍국가들이 뭉친 중동의 틈바구니 속에 있지만, 민족·언어·역사에서 주변 다른 중동 국가들과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는 이란 국민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으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반면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랍민족으로 아랍어를 사용한다. 이란 국민들은 선조들이 일군 페르시아 문명과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라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 같은 차이들과 종파의 차이에서 비롯된 신경전으로 이란은 아랍 국가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편이다.

특히 중동 패권을 놓고 싸우는 사우디와는 앙숙이다. 같은 이슬람 국가지만 사우디는 수니파 맹주로, 이란은 시아파 맹주로 자주 ‘으르렁’ 댄다. 또 국제 원유시장에서도 양국이 경쟁하고 있다. 때문에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를 가장 달가워하지 않은 나라도 단연 사우디였다. 그간 이란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중동 패권을 쥐고 있던 사우디는 제재 해제와 함께 밀려올 이란의 급속한 성장과 이로 인해 중동의 ‘힘의 구도’가 깨질 것을 경계했다.

지난 1월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 님르 바크르 알 님르를 처형하며 촉발된 사우디-이란 갈등 역시 표면상으로는 수니-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었으나, 이면에는 중동 전체의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출처: 뉴시스)

◆절대권력 ‘최고지도자’

이란은 정치구조적인 면에서도 독특한 형태를 띤다.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의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권력은 최고지도자에게 수렴한다. 이 권력은 입법·사법·행정 이른바 3권보다 우선하는 ‘절대권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절대권력은 절대군주를 타도한 이슬람혁명으로 탄생했다. 이슬람혁명으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호메이니는 이슬람법을 헌법으로 삼았고,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를 겸하는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자신이 올랐다.

이란은 입법·사법·행정 3권 분립과 선거에 의한 대통령·국회의원 선출이 이뤄지는 형식상 공화국 형태다. 하지만 왕에게 모든 권력이 편재돼 있는 ‘왕정 체제’와 지금의 이란의 정치 구조는 닮아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으로 각 부처와 관료 등을 관리하고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맡아 하고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서 주목된 만남은 단연 ‘최고지도자’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와의 만남이었다. 국정 운영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최고지도자를 만난다는 건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잭팟이냐, 김칫국이냐

2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4일 박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청와대가 밝힌 이번 ‘한-이란 정상회담’의 경제 성과는 인프라 및 에너지 재건 분야 등 30개 프로젝트에서 371억 달러(42조원) 규모의 양해각서(MOU) 및 가계약 체결이었다. 경제분야 59건을 포함해 체결된 MOU는 모두 66건. 여기에 바흐만 정유시설 2단계 공사(80억 달러) 등 수주가 유력한 사업까지 더하면 456억 달러(52조원) 규모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사상 최대의 경제외교 성과”라며 이란을 거점으로 한 ‘제2의 중동 붐’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30개 프로젝트를 면밀히 살펴보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가계약 2건(이스파한·아와즈 철도 사업, 박티아리 수력발전)과 일괄 정부계약(GA·government agreement) 1건, 업무협력 합의각서(HOA) 3건 등 6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질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자칫 ‘김칫국 마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 MOU가 모두 계약으로 이어진다면 진짜 이란발(發) ‘잭팟’이 터지게 되는 셈이다.
 

▲ 2박 4일 일정으로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일 오후(현지시간) 사드아바드 좀후리궁 로비에서 협정서명식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물론 이번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그간 약했던 한-이란의 관계 속에서 이란시장의 물꼬를 트고, ‘파트너십’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 계약까지는 많은 과정과 시간 등이 요구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협력을 합의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프로젝트 자금으로 25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국책은행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나라가 52조원 잭팟을 외쳤던 데 반해 이란 현지에서는 “한국서 250억 달러 유치”를 내세워 자신들의 ‘잭팟’을 주장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한국의 ‘외교 눈치게임’ 또한 과제다.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으로선 반미 정서가 강한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또 이란과의 숙적인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을 잘 달래는 것 또한 앞으로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으로 이제 한국-이란의 경제는 첫발을 뗀 수준이라 어느쪽으로 속단할 순 없다. 향후 해결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쪽박과 대박의 운명이 갈리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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