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천체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이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천체의 운행은 질서정연한 조화 그 자체다. 그렇기에 여기서 인간의 심령을 ‘힐링(healing)’하는 최상의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말에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천체의 음악’을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령으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란에서 52조원의 대박, 잭팟(jackpot)이 터졌다. 그 소식은 엄청난 폭발음처럼 우리 귀에 들려왔다. 그렇지만 경탄을 자아내며 감미롭기는 ‘천체의 음악’과 같았다. 이것으로 우리 경제가 불경기의 길고 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쉽게 찾아지지 않던 호전의 돌파구를 이로써 열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다. 지금의 우리 경제는 전체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일각에서는 뼈와 살을 깎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문제를 두고 시끄럽다. 더구나 경제를 견인하는 수출이 자꾸만 탄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여기에 경제의 버팀목이며 보호자이고 조장자여야 할 정치가 도리어 경제에 리스크(risk)로 작용하는 이른바 ‘정치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위해 요인이 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국민이 개탄하고 있는 때다. 이란은 우리와 1천년 세월을 훨씬 뛰어 넘는 인적 왕래 및 교역의 역사와 인연을 갖고 있다. 이런 때에 그 페르시아 상인들과의 질긴 인연을 되살려 행운의 ‘잭팟’을 터뜨렸다는 소식에 우리가 고무돼있다. 정상외교의 성과이며 이란에 끈질기게 공 들인 우리 기업들의 승리다.

하지만 아직은 다 된 밥도 아니며 즉시 숟가락으로 퍼 먹으면 되는 밥도 아니다. 이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손잡고 핵 개발 의지를 불태워오던 나라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의 대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 속에서 큰 고통을 겪어왔다. 그들이 세계 굴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수출 길이 좁아져 재정은 거의 바닥이 나고 그 여파와 주름살이 미친 경제와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지금은 핵 개발 의지를 접고 정상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나섰지만 그들에게 지나간 세월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얻은 것도 없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북한이 이를 알아야 한다. 이제 그들은 그 같은 경험을 토대로 핵 개발에 대한 무모함과 무용성에 대해 북한에 엄중하게 충고하는 한편 그때 못한 사회 및 산업 기반 인프라 구축과 각종 국가 발전과 경제, 민생에 도움이 되는 개발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래서 이란은 당연히 세계가 군침을 흘리는 거대 돈벌이 시장이 된 나라지만 솔직히 그들에게는 당장 현찰이 없다.  

따라서 그들 프로젝트를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들 발주처에 먼저 금융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 재원이 기업에 있든 정부가 기업에 지원해주든 해야 그들 프로젝트는 드디어 ‘꿸 수 있는 보배’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그 돈은 정부가 기업의 뒷돈으로 대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란에서 소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대부분의 돈벌이들은 거의 다 법률적인 구속력이 없는 ‘의향서(MOU)’를 맺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어서 우리보다 좋은 조건을 내미는 다른 나라 기업이 빼앗아 갈 수도 있고 이란이 그런 나라에 주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끼리 치고받으며 과당 경쟁하는 고질적인 버릇이 재연되기라도 하면 공사를 해봤자 남는 것이 없는 속빈 강정이 되고 만다. 이처럼 지금 단계는 김칫국부터 마시거나 숟가락부터 챙기고 나설 때가 아니다. 정작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일들을 실수 없이 착실히 해나가야만 본 계약이 이루어져 비로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밥이 지어지게 된다. 

이렇게 아직은 막연할지라도 이란에서 일구어낸 ‘잭팟’은, 핏기를 잃어가는 경제 형편을 보아서나 다른 여러 가지 우리의 내적인 측면에서 답답함을 풀어주는 쾌거다. 그 이면에는 현지의 열악한 사정을 처절하다 할 정도의 노력으로 극복해낸 우리 기업들의 눈물겨운 숨은 공이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40여년 전에 이란에 진출해 공사를 벌이면서 이란 이라크 전쟁을 견디어 냈으며 핵개발의지를 불태우던 시절 이란에 가해진 국제 제재 속에서도 왕따의 그들 나라에 계속 상사를 주재시켜 거래하고 친구도 돼준 어떤 기업의 경우가 그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다른 많은 우리 기업들도 그와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해금(解禁)된 이란을 한 나라의 정상으로서 가장 먼저 방문한 사람은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이다. 사실 중국은 제재 받던 이란에 미국 등 세계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도 공을 많이 들여왔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지금과 같은 해금 상황을 염두에 둔 잿밥, 바로 제재라는 염불보다 그것에 탐이 난 선제적 대응이었다. 중국으로 말하면 옛 페르시아 왕국 상인들의 주 거래국이기도 했다. 물론 신라도 그들의 거래국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여서 페르시아 왕국과 인연이 깊으며 상인들이 내왕했다. ‘쿠쉬나메’는 아랍 학자들이 엮은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의 채록집이다. 영국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여기에 7세기 중엽 아랍의 침공을 받은 페르시아 왕국의 왕자 일행이 신라에 망명해 와 공주와 결혼해 후손까지 봤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다. 인연 얘기는 더 있다. 삭막한 사막에 살던 많은 페르시아 상인들이 신라에 장사하러 왔다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풍요로움에 매료돼 주저앉아 사는 일이 흔했다는 기록도 그러하다. 신라가 페르시아와 갖는 인연의 흔적은 승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 수록한 신라의 향가 처용가(處容歌)에서도 찾아진다. ‘서울(東京)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나의 것이고 둘은 누구 것인가…’의 남의 가랑이 주인공이 ‘역신(疫神)’이라는 설과 함께 페르시아 상인이라는 설이 있다. 이처럼 이란과 우리의 인연은 깊다. 그 깊은 인연과 역사가 부활해 서로가 ‘대박’ ‘잭팟’을 일굴 수 있도록 양국 관계가 발전했으면 한다. 특히 북의 비핵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돼준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로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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