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통으로 읽는 한국문화’ 저자)

“설날엔 왜 떡국을 먹어요?”

이런 질문을 외국인들이 하면 얼른 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당연한 우리 문화이기에 참고할 자료도 마땅치가 않아 더욱 그렇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무심코 하는 일상적 문화 그 자체가 바로 궁금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 생각으로는 한국인은 밥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왜 설날 명절에 좋아하는 밥 대신에 떡국을 먹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설명만 하면 어째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설날의 대표적인 떡은 가래떡이다. 떡은 쌀 문화권 사람들이 쌀을 활용한 식품인데 이는 동남아, 중국 일본 등지, 즉 찰벼 재배 지역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조금 더 실용적으로 이해해보면 아마도 설날의 가장 큰 행사인 세배 드리기와 관련있지 않나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날씨가 차서 가래떡을 오래 두고 먹어도 상하지 않는 보관의 수월성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도 초사흘까지는 집안 어른들께 새해 인사를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집에 세배 온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마땅한 예의였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불을 피워서 밥과 국을 준비하기란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흰쌀을 변용하여 가래떡을 만들었고 그것에 뜨거운 국물을 더해서 한 그릇 주식으로 충분하게 하였다.

또한 가래떡을 많이 해두어 대보름까지 두어도 날씨가 차서 상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는 손님마다 손쉽게 밥과 국을 대신하여 금방 대접할 수 있기에는 떡국이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어릴 때 세배 드리러 가는 집마다 떡국을 차려주시는 통에 종일 떡국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도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떡국을 새로 끓여서 대접하곤 하였다. 그것이 거의 대보름까지 이어졌나싶다. 어머니께서는 커다란 독에 떡국 떡을 물에 담궈 두고 계셨다. 그래서 설 무렵이면 제일 바쁜 곳이 방앗간이었다. 예전에는 가래떡을 빼려고 방앗간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흔했다.

이처럼 ‘떡국 한 그릇’에도 우리 문화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외국인들, 혹은 해외자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조상의 지혜와 그 정서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다문화가족과 외국인들이 급증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소개와 그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단체에서는 외국인들에게 설날문화 체험행사로 떡국 만들어보기나 세배하기 제사지내기 등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 행사 덕분에 낯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하지만 겉모양의 행사에만 치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에게 설날 문화를 소개할 때는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기보다, ‘세배’ 의식 하나를 통해서도 윗사람 중심의 한국적 가치관이나 다소곳한 몸가짐예절을 알려주는 것이 초점이다. 이런 가치를 간과하고 요즘 사람들도 잘 하지 않는 절하기 연습만을 강조해서는 외국인들이 한국문화의 정신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피곤한 일을 다시는 안하고 싶다든지, 한국문화체험은 너무 힘들다든지, 절하는 것은 굴욕적인 것을 강요하는 문화’ 등으로 부정적인 인상만 남길까 기우가 인다.

명절은 외국인에게 더불어 사는 한국사회를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전통문화를 통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그 정신을 공감하게 되면 이국에서의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어 한국생활에의 적응도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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