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톨스타인 베블렌(1857~1927)은 대표적인 그의 명저인 ‘유한계급론(Leisure Class)’에서 미국의 ‘악덕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100년 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한 그는 마르크스에 따른 경제력에 의한 계급화에 기반을 두되, 같은 재벌이라도 얼마만큼의 과시적 소비를 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더욱 세분화된다고 보았다. 이른바 ‘유한계급론’이다. 자본주의가 만든 한가롭고 비생산적인 상류계급, 즉 유한계급들은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 같은 활동을 주로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한계급은 약탈하기 위한 힘을 스포츠 정신으로 표출했으며, 스포츠 정신은 종교가 옹호했다는 것이다.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은 미국 자본주의의 여러 폐해가 드러났던 1900년대 전후 시대상을 잘 반영해주었다. 스포츠를 유한계급의 대표적인 여가 활동으로 지목한 것은 산업사회의 발전과정을 철저히 파헤치면서 얻은 바로 그의 유한계급론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그의 이론은 선진국이 본격적으로 국민들의 복지를 사회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으면서 오늘날 선진국에서 ‘장롱 속 이론’으로 치부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국에서 사회분석의 유효한 방법으로 활용된다.

지난달 29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한국체육학회 주최의 제54회 체육주간기념 제35회 국민체육진흥세미나에서 ‘통합체육회 출범과 국민체육복지’라는 주제 발표를 한 필자의 주된 내용은 선진국 문턱에 올라있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운동을 선택적인 활동이 아닌 보편적 활동으로 인식하고 국민들이 운동을 하고 싶은 환경 조성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베블렌의 유한계급이 스포츠를 통해 과시적 문화를 보이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스포츠를 현대인의 기본권으로 삼아 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는 게 미래 한국의 목표이자 방향이 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지난달 출범한 통합 대한체육회는 국민들을 위한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초고령화사회로 국민들이 늙어가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한국 사회의 급변하는 환경에서 통합체육회의 출범은 어찌보면 시대적 당위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국민복지를 위한 공공서비스로 내세운 선진국과 같이 한국도 스포츠클럽의 기본적인 토대 위에서 생활스포츠를 자리 잡도록 해야 할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체육의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의 국민생활체육회를 합친 통합 대한체육회는 시대적 상황과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그동안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로 국내체육단체가 이원화되면서 학교 체육에 대한 관심 부족, 전문 체육 저변 약화, 은퇴 선수 일자리 부족, 생활 체육 기반 미흡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며 “스포츠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통합 대한체육회의 비전이 국민들이 운동을 하고 싶은 환경 조성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운동을 통해 소질이 뛰어난 선수는 엘리트 선수로 육성하고, 전 국민이 운동으로 건강해지면 의료비 부담을 줄이며 국가 정책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원래 우리나라 스포츠 패러다임의 뿌리는 스포츠클럽에 기반한 것이었다. 1920년 조선체육회가 출범할 당시 풀뿌리 체육이 중심이 됐던 ‘스포츠구락부시스템’이었다.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참여하고 성금과 각종 후원으로 대회를 열며 건강과 화합을 도모했다. 하지만 1970년대 북한과의 스포츠 경쟁이 본격화되고 산업화 고도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 주로도 엘리트 체육을 장려하면서 엘리트 체육 중심의 비정상적인 환경이 됐다. 스포츠클럽시스템을 정착시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어야 하는 통합 대한체육회는 소수인만이 운동을 즐기는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이 아닌 운동이 국민의 ‘기본권’이 되는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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