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만물의 시작 일에 신께 올리는 흠 없는 제물

설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민속학자들은 중국의 사서들이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 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한 것을 보아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떡국은 18세기 말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설에는 흰 가래떡으로 떡국을 해먹고 떡국으로 차례상을 냅니다. 설이란 말에는 ‘삼간다, 근신한다’는 뜻이 있는데 그 해 첫날인 설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일 년 열두 달을 아무 탈 없이 보내려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일명 ‘첨세병(添歲餠)’으로도 불립니다.

설날은 ‘천지만물이 시작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쌀에 곡령이 깃들었다고 믿었는데, 흰쌀로 빚은 가래떡은 순수하고 깨끗해서 부정이 들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래떡을 길고 가늘게 만들어 식구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새로운 한 해의 풍요를 빌기도 했습니다.

설날 떡가래의 모양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래떡을 동그랗게 써는 이유는 새해를 맞아 해를 상징하는 둥근 떡을 먹는다는 설도 있고, 동전처럼 둥근 모양을 닮은 떡국을 먹고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설날 차례상에 올리는 흰 떡국은 천지만물이 시작되는 날에 신께 바치는 흠 없는 제물을 상징하며, 우리 민족이 흰색을 신과 관련된 색으로 여겨 숭상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성한 제사나 고사상에 올리는 시루떡도 반드시 순수 무색의 백설기를 쓰거나, 돌상에 백설기를 올리고 청홍색이 아닌 흰 실타래나 혹은 길게 뽑은 흰떡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작가 민홍규는 그의 글 <우리 문화읽기>에서 흰색을 숭상해온 우리 민족에게 하늘의 큰 뜻이 있음을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백색의 평화는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대립과 전쟁에서 상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20세기까지 약육강식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상대가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다는 상생의 시대가 되었다. 결국, 백색과 평화를 숭상해온 한민족의 저력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