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피첩 일부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筆蹟霞帔帖, 보물 1683-2호)’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자료다.

‘하피’는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의 예복을 가리킨다. 1810년 정약용(1762~1836년)은 전남 강진 유배시절 부인이 보낸 치마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었다. 이를 모아 놓은 것이 하피첩이다. 정약용의 두 아들과 후손들은 이 하피첩을 대대로 간직하며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삶의 가치관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이를 분실했다. 행방을 알 수 없던 하피첩은 지난 2004년 경기도 수원의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발견돼 세상에 다시 나왔다. 이후 작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하피첩을 국립민속박물관이 구입했다.

하피첩에선 선비의 마음가짐, 삶을 풍족히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효와 우애 등을 다루고 있어 정약용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하피첩은 원래 4첩이었으나 현재는 3첩만 전해진다. 다산은 자녀들이 효제(孝悌)를 바로 세우고(1첩), 자아를 확립한 후(2첩) 학문을 익히기를(3첩) 바랐다.

박물관에 따르면 첩의 순서는 유물 보존처리를 위해 두 권의 첩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1첩엔 ‘가족 공동체와 결속하며 소양을 기르라’는 내용을 담았다. 서문엔 다산이 하피첩을 만들게 된 사연이 적혀 있다. 정약용은 두 아들이 이 첩의 글을 보고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二親之芳澤)을 음미하기를 바랐다. 다산은 효제(孝悌)가 인을 실행하는 근본이라 말하며 부모와 형제간 화목하기를 당부하고, 비록 화를 당한 가문의 자손일지라도 분노를 참고 화평하기를 바랐다. 또한 현재는 비록 폐족이지만 아들과 손자 세대에 이르면 과거와 경제에 뜻을 둘 수 있으니 문화적 안목을 잃지 않기를 당부했다.

그해 9월에 쓴 2첩에선 ‘자아 확립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아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3첩엔 주로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을 대비하라’는 당부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엔 온 마음을 기울여 자신의 글을 연구해 통달하기를 바라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학문뿐 아니라 재산을 베풀고 달관하는 등의 처세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러한 내용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하피첩,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 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오는 4일부터 6월 13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에선 하피첩,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 보물 1683-1호)’ 등 정약용 관련 유물 30여점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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