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요즘은 둘 셋만 모여도 나라걱정, 경제걱정이다. 필자가 엊저녁 동네 텃밭에서 만난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한 이웃(83)은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60년대에 독일 등에서 차관을 도입하고 간호사 광부 등을 해외에 파견해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사업에 관여했던 것을 늘 자랑스럽게 회고하는 이다. 그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민족 고유의 덕목인 예의범절이 퇴색하고 청년실업난이 심화돼 우리 사회 전체가 위기”라고 전제, “‘하면 된다’고 구호를 외치며 국민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온 국민을 한 덩어리로 통합해줄 수 있는 리더십이 아쉽다”고 말했다. 여행사 대표인 다른 이웃(63)은 “워낙 세계 경제가 안 좋은 탓에 경기가 잘 회복되지 않는 것 같다”며 “누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국민이 아픈 부분을 치유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했다.

‘국가백년대계’. 앞으로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이 이 말만 생각하면 좋겠다. 깨어있는 민의, 분노한 표심이 그대로 드러난 4.13총선 이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느냐고 혹시 묻는다면 말이다. 우리가 현재 비상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둔 시점. 어느 대통령이라도 한번쯤은 퇴임 후를 생각해볼 법한 때이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된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다고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도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마음 비우고 살펴보면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보일 것이다. 초심에 충실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권핵심부는 박 대통령 퇴임 후를 위한 정략적 계산보다는 한국의 미래를 위한 토대를 튼튼히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국가경영상 가장 중요하고 굵은 정책적 뼈대를 소신껏 세워놓고 임기를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 삐뚤어진 교육을 바로잡고 안보를 튼튼히 하며 남북관계를 통일을 향해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데 묵묵히 진정성있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이번 선거야말로 선거혁명이다. 의원내각제 정부였으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할 정도로 준엄하고 뼈아픈 유권자들의 심판이 내려졌다.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보다 낮은 자세로 소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구중궁궐같은 관저에서 나와 장·차관들과 정책토론을 일상화한 모습을 보고 싶다. ‘받아쓰기’만 하는 국무회의 대신 말이다. 또한 문고리권력으로 지칭된 3인방 등 청와대 보좌진 등에 대한 인적 쇄신을 통해 보다 열려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여야 정치권은 구태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하자. 작금의 정치가 국민 눈높이에 크게 미달하는 불편한 상황이다. 정치개혁이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된 것이나, 국민의당이 호남 의석을 석권한 것은 다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여권의 무능과 독선에 따른 반사적 이익이다. 조선시대 사색당파 싸움 같은 이전투구를 하지 말자는 정치권 전체의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패권주의라는 옷을 벗고 국민통합과 기본권 보장을 위한 의정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 국민리콜제를 제의해왔다. 차제에 국민의당이 공약한 국민소환제가 제대로 이행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한국정치가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서는 군림하는 정치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로의 제도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정당법 공직선거법을 손질해 몰염치한 인치가 정치판을 지배하지 않게 해야 한다. 지역주의의 벽을 깨뜨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인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제의한 개헌 논의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김 당선인은 “‘87년 체제(대통령 5년 단임제)’는 현재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므로 권력구조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며 “지방분권을 더 강화하고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참고해 소수당의 득표율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끈 바 있다.

조선 세조 때 한명회는 “임금이 되려는 자는 천심(天心)을 얻어야 하며 천심은 민심(民心)을 얻어야 수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맹자(孟子) 이루상편에는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번영과 생존을 누리고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다. 맹자는 좋은 운명이건 나쁜 운명이건 모두 하늘이 내린다는 ‘운부천부(運否天賦)’라는 말도 남겼다. 위정자들이 민심을 거스르면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국민 앞에 크게 비운 정치, 천리를 따르는 큰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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