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통일I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지난 4월 4일 검찰은 벤처1세대 기업인인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를 구속했다. 호 대표는 ‘팁스(TIPS)’ 보조금을 받아주는 대가로 벤처기업 5곳에서 30억원의 지분과 허위투자계약서로 정부 보조금 2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민가 주도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의 운영사인 더벤처스의 대표가 구속되자 벤처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모처럼 조성된 벤처투자와 창업활성화 분위기가 이번 일로 식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중소기업청이 2013년 시작한 ‘팁스’는 벤처투자사(운영사)가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면 정부출연금과 민간부담금 등을 합쳐 최대 9억원을 투자하는 창업지원 사업이다. 운용사 21곳이 선정됐고, 현재 158개 스타트업이 지원을 받고 있다. 팁스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정부가 매칭하는 방식으로 기존 벤처캐피털들과는 달리 기술력 있는 초기 스타트업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창조경제의 성공 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중기청은 호 대표가 구속 기소될 경우 더벤처스의 팁스 운영사 자격을 정지하고 정부자금을 환수할 계획이다. 또한 더벤처스가 미래창조과학부의 ‘투자자연계형 기업성장 R&D지원사업’에도 출자기관으로 선정돼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 등의 역할까지 해왔으나 미래부는 더벤처스의 출자기관 지정을 취소했다. 더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그동안 받은 정부 지원금을 환불해야 한다. 정부지원금은 총 41억여원으로, 기업당 평균 4억여원 수준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더벤처스의 투자금(1억~3억원)과 정부지원금 4억원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고 한다. 대부분 설립 1~2년차인 이들은 아직 사업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수익모델을 발굴 중이어서 국고 환수조치는 곧 자금압박과 폐업위기를 의미한다. 2000년대 초 일어난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등 ‘벤처 게이트’가 벤처 열풍을 무너뜨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으로 창업 시장이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통해 호 대표 개인의 과실이 있으면 처벌하고 팁스 운영의 문제점이 있으면 제도를 보완하면 되는 것이지 벤처정책 전체가 비판을 받고 후퇴돼서는 안 된다. 과거 ‘벤처 게이트’가 당시 벤처 붐을 식혔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겨우 활기를 불어넣은 벤처투자 열기에 찬물을 뿌리는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재도전 인식개선 사업’과 ‘증권사의 벤처·중소기업 등에 투자 및 융자사업’ 허용은 바람직하다 하겠다.

지난 4월 19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중소기업청은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 6개 금융기관과 재도전 인식개선 사업 공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실패한 기업인의 재도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해소, 재기 지원정책의 인지도 향상이 골자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80만개 이상 기업이 폐업한다. 사업 실패는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재기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실패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 창업 실패가 신용불량자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누구도 창업에 나서길 망설인다.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만큼이나 실패한 기업인도 소중한 자산이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퍼스트 펭귄’이 등장할 수 있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실패를 경험한 중소기업인이 재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증권사도 기술력이 있는 벤처·중소기업 등에 투자 및 융자 사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벤처캐피털보다 규모가 크고 은행보다 공격 경영을 하는 증권사가 모험 자본에 투자함으로써 중기·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벤처업계는 자정 노력을 통해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는 팁스를 재점검해서 제도의 미비점은 보완하되 어떠한 경우에도 벤처정책이 후퇴하거나 흔들려서는 안 된다. 벤처정책의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실효성과 지속성 제고, 재도전이 용이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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