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성시도의 서화사 부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한낮 광통교 기둥에 울긋불긋 그림 걸었으니 여러 폭 긴 비단 그림은 병풍을 만들었네.’

조선의 선비인 강이천(1768~1801년)이 18세기 후반 한양을 묘사한 시 ‘한경사(漢京詞)’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서울 한복판 광통교 일대엔 그림가게가 많았다. 광통교는 한양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조선 말기의 천재화가 장승업(1843∼1897년)도 이 근처에서 그림을 그려 팔았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조선사회에서 한양은 급격하게 상업도시로 변모해가면서 기존의 신분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를 축적한 중간계층이 등장하면서 문화 형성과 향유는 더 이상 양반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광통교 서화시장에서 잘 나타난다. 이곳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그림을 구입할 수 있는 열린 미술시장이었다.

광통교 일대 지전(종이와 가공품을 팔던 가게)과 서화를 생산한 그림가게인 서화사에서는 궁중양식의 장식화부터 사군자, 산수화, 액막이용 세화까지 다양한 그림을 판매했다. 또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상인과 화가들도 출현했다. 서화는 도시민의 일상 주거공간과 그들이 모이는 유흥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실용적인 용도로 팔렸다. 그림도 일반 대중의 취향과 융합되면서 다양하고 독특한 형식과 미감이 더해졌다.

▲ 1900년경 종로에서 바라본 광통교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오는 7월 3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광통교 서화사’ 전(展)에선 양반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랑받았던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 서화가 대중화돼가는 모습도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서화의 ‘생산과 소비’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서화란 그림과 글씨를 합쳐 말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선 그림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엔 서화사, 서화를 소비한 민가와 술집 등도 세세히 재현했다. 여기엔 실제 사극영화를 연출한 미술감독이 참여해 200여년 전 한양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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