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신사참배 적극 가담‧민간인학살 단체 관련설
초기회장들, 군부 찬양… 6대 지덕, 불륜의혹도
엄신형·이용규·길자연·홍재철 줄줄이 ‘금권선거’
최성규·이·길·홍 교회세습으로도 사회적 비난 사
이현령비현령 이단영입·해제로 분열·혼란 자초
이영훈 4.13총선서 기독자유당 지지, 쓴맛 봐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기총은 꼭 해체돼야 합니다.” 최근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진행한 CBS 폐쇄·한기총 해체 촉구 서명운동 현장에서 만난 목회자들의 목소리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종교를 명분삼은 정치단체라 할 만큼 정치 행보로 뉴스에 더 오르내린 한기총. 한기총의 흑역사를 장식한 역대 대표회장들의 행보를 보면 왜 목회자들조차 한기총 해체를 요구하는 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기총 대표회장 중에는 목회자 자질을 의심받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보수 정치계의 입장에 서서 나팔수가 되는가 하면 정치계 권력 싸움 추태를 한기총 선거에서 고스란히 재현하기도 했다.
◆일제 때 신사참배 앞장섰던 한경직 창립준비위원장
거슬러 올라가면 한기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한경직 목사가 있다.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으며 한기총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경직 목사는 인품과 청렴함으로 한국교회가 추앙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흑역사는 덮어버리기엔 사회적 파장이 크다.
한 목사는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맹세로 시작하는 개신교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저버린 전력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 천황신에게 경배하는 신사참배를 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또 정치적 활동에도 두각을 보였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기 전인 1945년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조직했던 장본인이며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한 목사가 미군정 시절 민간인 학살의 선봉장이었던 ‘서북청년회(서청)’의 회원이었던 영락교회 청년들의 영적 지도자였다는 사실이다. 한 목사는 단행본 ‘한경직 목사’에서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어요.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라고 말해 비난을 샀다.
서북청년회는 제주 4.3사태(1947~1954년) 등 잔인한 테러와 방화, 강도, 강간, 절도 등 학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월남자들로 구성된 극우단체였기 때문이다. 제주 4.3사태 사건희생자는 신고 접수된 결과만도 1만 4028명이나 되며 대부분 공산당 빨갱이로 몰린 민간인이다.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와 태극기를 들고 다니며 강매하고 이에 불응하면 공산당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고문·폭행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가족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성상납에 강제결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개봉된 흑백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에는 제주 4.3 사태에서 서북청년회가 저질렀던 만행의 일부가 스크린에 담겨 당시 참혹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김구를 암살한 자도 서북청년회의 일원이었다. 서북청년회의 실체는 사태 후 46년이 지난 2000년 진상을 조사하며 드러났다. 한 목사는 이러한 서북청년회가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조직됐다고 언급하며, 이들이 제주 4.3사태 때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알려 적잖은 충격을 줬다.
◆정권에 고개 숙인 역대 대표회장들
한기총 2대 대표회장을 맡았던 정진경 목사와 6대 지덕 목사는 당시 정부 권력에 고개를 숙였다. 정진경 목사는 1980년 8월 6일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전두환 군부를 찬양하는 기도를 해 큰 반감을 일으켰다. 같은 성결교단 목회자들은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한경직, 정진경, 문만필, 조향록, 강신명 목사 등 23명을 반란방조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한기총 설립 주축이 됐다(본보 2014년 10월 8일보도 [한국교회진단②] 태동부터 잘못된 한기총… 교세 잃고 ‘자멸’ 조짐 (1) 참고).
지덕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초등학교 동창임을 과시하며 이 대통령을 극찬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 목사는 불륜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교회세습·금권선거로 최악의 흑역사 연출
교회를 세습해 세간의 비난을 받는 전직 한기총 대표회장도 줄을 이었다. 11대 대표회장 최성규 목사가 아들 최용호 목사를 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했고, 13대 이용규 목사가 아들 이호현 목사를 성남성결교회 후임으로 청빙했다. 또 9·10·17대 대표회장을 역임한 길자연 목사는 아들 길요나 목사에게 왕성교회를, 18·19대 대표회장을 맡았던 홍재철 목사는 아들 홍성익 목사에게 경서교회를 넘겼다.
한기총 14~18대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엄신형·이광선·길자연·홍재철 목사는 금권선거로 한기총을 폭풍 속으로 휘몰아 넣었다(본보 2016년 4월 23일 보도 [연재] 한기총 흑역사 ‘금권선거’… “교회 100년史서 가장 추악하고 서글픈 사건” 참고). 엄신형 목사는 투표 전 자신이 대표회장으로 당선되면 한기총 구좌로 10억을 입금하겠다고 공약했고, 결국 당선됐다.
금권선거 논란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는 17대 대표회장이었던 길자연 목사 때였다. 길자연 목사와 대립하던 이광선 목사의 폭로로 금권선거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백에서 수천만원이 든 돈 봉투가 오갔다는 증언이 속출했고, 7대 대표회장이었던 이만신 목사는 2011년 엄신형·이광선·길자연 목사를 금권선거 당사자로 지목하며 회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18대 당선자인 홍재철 목사는 길자연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당선될 당시 돈 봉투를 직접 돌린 인물로 지목됐다. SBS 시사 프로그램 ‘현장 21’에서는 ‘한기총 돈선거 10당 5락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금권선거를 보도해 일명 ‘10당 5락(10억 뿌리면 당선되고 5억 뿌리면 떨어진다)’사건으로 회자됐다.
길 목사는 2013년 총신대 총장직에 당선됐는데, 정년 만 70세를 넘긴 사람은 교단산하 모든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교단 규정을 어겨 학교와 교단 내에서 극심한 반감을 샀다. 결국 그는 사퇴의사를 밝혔다.
◆기준 없는 이단영입·해제로 분열 자초
홍재철 목사는 개정된 한기총 7.7 개혁정관에 따라 직전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와 같은 교단 소속이라는 이유로 대표회장에 출마할 수 없게 되자 정관 재개정을 추진해 결국 당선됐고, 연임까지 했다. 당선 이후에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는 박윤식 평강제일교회, 다락방 등에 대한 이단 해제 문제로 한기총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또 이단해제를 문제 삼는 쪽을 도리어 이단으로 규정하는 등 ‘한기총의 오락가락 이단규정’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본보 2016년 4월 22일 보도 [연재] 한기총家 몰락 부른 ‘이단논쟁’… 신뢰 잃고 비웃음 얻은 ‘참사’ 참고).
30년이 채 되지 않는 한기총의 역사를 대표회장들의 부패상 가득한 행적들이 가득 채운 셈이다. 게다가 이단규정·해제 등 문제로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는 한기총을 살리겠다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홍재철 목사로부터 대표회장직을 이어받았지만 4.13총선에 개입했다가 실패의 쓴맛만 봤다(본보 2016년 4월 25일 보도 [연재] 한기총과 기독자유당 향한 우려… ‘혐오공약’으로 뭉쳤나니 참고). 이러한 역사를 밟아온 한기총이 종교단체로서의 공교회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편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관심이 많다는 김은철(가명, 84) 목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독교연합단체는 성서를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면서 “언론과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면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다는 한기총 역대회장들이 오히려 도덕성을 잃고 각종 비리를 저질러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