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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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에게도 다른 친구들은 다 고백을 받았는데 자신만 고백을 받지 못해서 고민인 초교 6년 여학생, 부모님 모르게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초교 4년 남학생,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부모님이 만나지 말라고 해서 고민이라는 초교 3년 여학생의 사례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도대체 왜 어른들을 흉내 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 가능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호기심, 금지된 것을 할 때의 묘한 쾌감, 어른들에 대한 반항과 도전 의식, 또래 집단에 보이기 위한 영웅 심리나 동지 의식, 평범함에서 일탈을 꾀하고자 하는 심리,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강렬하게 분출되는 몸의 욕구 등.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 요인은 바로 ‘불안함’에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 자체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다른 세계, 즉 어른의 세계를 꿈꾸고 흉내 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난과 빚에 쪼들린 사람이 마지막 남은 거금을 쏟아 부어서 복권을 사는 행위와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이 이른바 ‘부자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는 복권을 사는 순간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된다. 당첨 발표가 있기 전 까지 그는 설렘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발표가 끝나는 순간 자신의 낙첨을 확인하고는 그는 더욱 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맛 볼 것이다. 즉 실패로 끝나게 되는 부자 되기다.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다. 자신의 진로와 직업 선택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해야 하고,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여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즐거움과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 취미나 특기를 가져야 하고, 그리고 놀아야 한다. 어찌 보면 해야 할 과제들이 수북이 쌓여 있기에 아이들은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이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지금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건너뛰는 것이다. 즉 자신이 마치 성인기에 들어선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돈을 벌겠다고 하고, 친구로서의 이성이 아닌 사랑으로 강력하게 결합된 연인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른 되기를 어설프게 시도한다면, 그 아래 내면에 묻혀 있는 불안감을 발견해야 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벌써부터 어른 흉내 낸다”라고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렇게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지 속마음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부모가 아이를 도와 줄 수 있다.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감과 부적응감을 해소시켜 준다면 아이는 더 이상 어른 되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아이도 알 것이고, 지금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느끼면 될 테니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어른 되기를 가르쳐 줘야 한다. 어른이 되면 얼마나 살기 힘들고 각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것들은 아이들이 진짜 어른이 되고 나서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커 나가는 시기에 누구나 다 어렵게 보내고, 마음의 열병을 앓고, 고민도 많이 하면서 보낸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또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나 혼자만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부모도 어린 시절 가졌던 고민과 어설프게 어른 흉내 내기를 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들을 자녀에게 들려주자.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부모가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크다고 마음이 크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아이들은 이제 몸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른처럼 수염도 생겼고 가슴도 부풀러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아직 더 자라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깃들인 자녀와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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