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일본은 지진과 화산 폭발, 쓰나미(tsunami)가 잦은 나라다. 일본 어느 구석에선가 이런 일들이 터지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들 아주 엉터리없는 과장은 아닐 것이다. 자고로 일본이 이웃나라 땅을 심히 탐내어 온 것은 이처럼 그들의 생활 터전이 항상 불안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의 ‘침략’ 근성은 바로 안전한 땅을 빼앗기 위한 의도에서 발휘돼왔던 셈이다. 우리 땅 독도를 그들 땅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도 그러한 것 같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구마모토 현에서 발생한 지진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진은 단발로 그치지 않았다. 여진이 계속돼 땅을 가르고 진동시켜 주민들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혼란은 없다. 줄을 설 때도 새치기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느 자연 재해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서로 배려해가며 질서 정연하게 대피 생활의 불편을 감내한다. 정부를 규탄하는 증오심 가득한 아우성도 소요도 선동도 없다. 그들의 국론은 침착하고 효과적인 피해복구와 피해민 구호에 철저히 수렴돼있는 듯 보인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슷한 패턴의 자연재앙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어 항시 경각심을 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 재난과의 싸움이 그들에게는 생활화돼 있다. 그들에게는 ‘불감증’에 빠져들 여유가 없다. 재난의 피해와 참상을 머릿속에서 잠시도 지울 틈이 없다. 왕왕 실수를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경각심은 자연 재앙에 대한 조기경보와 감시 시스템, 대피 절차 및 구호, 피해복구 방법과 관련 매뉴얼(manual)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자연의 괴력에 완벽한 방재(防災)란 있기 어렵지만 내진(耐震) 설계가 잘 된 건물로 피해를 줄이듯이 그들의 평소 방재 노력도 유사시에 큰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동일한 재난이 일본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다면 그 피해규모를 일본이 입는 피해규모로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만큼 자연 재난에 대한 일본의 대비는 국가적으로 철저하다. 정부는 사전 방재 노력과 주민 훈련을 통해 유사시에 대비하며 일이 터지면 신속히 손발을 맞추어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정부가 빈틈없이 최선을 다하면 주민들에게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뿌리 내린다. 재난에 닥쳐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옥신각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과 쓰나미로 폭발을 일으켜 그 일대가 아직도 사람이 못 살 폐허로 남아있지만 그것 때문에 정부와 주민이 싸우지는 않는다. 재난이 일어나면 약탈 폭동이 일어나고 무법천지로 변하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에 비추어 보면 일본은 무척 ‘신기한 나라’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특별히 착한 국민성을 가져서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도움이 필요한 피해주민의 입장에서 정부가 펼치는 용의주도한 최선의 노력이 주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노력이 쌓여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 봐야 한다. 하긴 자연 재난에 직면해 정부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고 힘과 마음을 합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다. 일본이 자연 재난에 항시 경각심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피하며 궁여지책이다. 재난이 불감증에 빠져들 틈을 주지 않고 빈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일본의 상황과 형편은 결코 행복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과 밀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고질이다. 불감증에 대한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됨에도 우리 사회 특유의 그 불감증은 고쳐지지 않는다. 불감증은 다방면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 불감증 때문에 가끔은 당하지 않아도 될 자연 재난이나 사건 사고에 고통을 받아왔다. 태풍이나 홍수 피해, 역병 전파 등도 재난에 대한 불감증이나 사전 대비 부주의, 처치(處置)의 실기(失機) 등에서 되풀이 되는 일이 많다. 가끔 경험하는 대형 건물과 다리의 도괴(倒壞), 선박의 침몰 등은 안전 불감증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는 일본보다는 월등히 국토환경이 안전하다. 일본처럼 항상 지진공포 화산공포 쓰나미공포에 떨며 긴장하고 고도의 경각심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소모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더 효과적으로 재난에 대비하고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이 닥쳤을 때 냄비처럼 펄펄 끓다가도 이내 식는다. 곧 잊어버리며 불감증에 빠진다. 일본과 달리 드문드문 터지는 자연 재난이나 사건사고가 이 같은 망각의 틈을 주어 대비를 소홀히 하게 만드는 셈이다.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라고 자연 재난으로부터 아주 안전한 나라는 아니다. 한 번 겪은 재난이나 사건 사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는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것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불감증으로 희석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연 재난이나 사건 사고에 대한 불감증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위험한 적과 대치해오면서 가끔은 무력 충돌을 빚어오기도 했지만 안보의 진정한 위태로움에 대해 경각심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안보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은 일본의 자연 재난에 대한 경각심만큼이나 항시 유지돼야 마땅한 절체절명의 대명제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실제 일상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정치나 재계, 사회지도자들로부터의 솔선도 부족하다. 북이 핵 기술을 고도화하고 그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공공연히 핵 공갈을 구사하기 시작했는데도 우리는 그것에 충분히 예민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일찍부터 경각심을 갖고 안보의 위태로움에 차분히 제대로 준비하고 대비해왔더라면 지금쯤은 저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안보역량을 구축해놓았어야 옳다. 그랬더라면 저들이 겁을 먹어 감히 핵을 가졌더라도 우리를 상대로 도발적 망발을 늘어놓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불감증은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인들의 민의(民意)에 대한 불감증이다.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의 불벼락을 맞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벌써부터 그것을 잊은 듯 딴 짓에 정신이 팔렸다. 이래서는 정치가 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