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이병초(1963~  )

숙소 옆에 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 검둥이 목에 감긴 줄이 너무 꽉 조여진 것 같아서 그걸 풀어주려고 다가갔는데 검둥이는 이빨 드러내고 앞발로 버티다 대문 지주목 밑동을 야물게 씹어버렸다 위아래 이빨이라도 부러졌는지 피가 질질 흐르는 잇몸을 핥으며 바들바들 떤다 겁에 질린 검둥이를 껴입고 바들거리는 햇살. 쭈그러진 개밥그릇에 담긴 황당한 햇살이 피 흐르는 잇몸에 박혀 빛난다.

[시평]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고는 퇴근을 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숙소 옆 개를 여러 마리 사육하는 집 앞을 지난다. 집 앞에 검둥개 한 마리 목줄이 꽉 조여진 채 매어 있다. 마치 일터에서 하루 종일 목줄에 매어 힘겹게 일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 목줄을 좀 느슨하게 풀어주고 싶어 검둥개에게 다가간다. 그랬더니 그 검둥개 자신을 해치려는지 알고, 이빨을 드러내고 앞발로 버팅긴다.

그래,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묶여 있으며 지냈으니, 누군들 믿을 수 있겠니. 묶인 채 주는 밥이나 먹으며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아왔으니, 이 세상 누구를 믿겠니. 이빨을 드러내는 그 심정,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버팅기는 그 마음 알겠구나.

변변한 대접이나 사랑 받아보지 못한 채 살아온, 그래서 오직 매인 듯이 일터와 숙소만을 오가며 살아온 사람들. 겁에 질린 검둥이 마냥, 세상을 경계하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모습, 쭈그러진 개밥그릇에 담긴 황당한 햇살 마냥, 피 흐르는 잇몸에 박혀 빛나는 햇살 마냥, 슬프게 시나브로 번지는 어느 오후 한때의 풍경을 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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