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번잡한 뉴욕 시내 번화가에 사람을 세워놓고 빌딩의 높은 곳을 계속 바라보도록 했다. 그러자 곁을 지나가던 사람 열 명 중 여덟 명이 같은 곳을 올려다보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위를 쳐다본 사람도 절반이나 됐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따라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조 현상이라고 한다. 

동조 현상은 정보가 부족할 때 많이 발생한다. 판단 근거가 되는 정보가 부족할 경우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어지는 것이다. 아득한 시절, 무리를 따라 가야 사냥감을 발견하고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혼자 사냥을 하면 사냥 확률이 낮고 무엇보다 사나운 짐승을 만났을 때가 문제였다. 물건을 살 때 가장 유행하는 것을 선호하거나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행을 좇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사람들은 무리 속에 섞여야 안전하다고 느낀다. 집단의 일원으로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적 불만을 해소하면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동도 무리를 지어서는 해낸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수록 무리를 지어서 하는 게 수월하다. 나쁜 짓도 무리를 지어서 하면 죄책감을 덜 느낀다. 책임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도 작용한다. 축구장의 훌리건이 그런 케이스다. 

뉴욕 주택가에서 한 여성이 괴한의 습격으로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가 살해당하기까지 30분이 걸렸고, 38명의 목격자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는 방관자적 태도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대도시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생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시키고, 중간에 한 명이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연기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참가자가 많은 그룹일수록 신고하는 사람이 적었다. 발작을 한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고를 했다. 주변에 나 외에는 아무도 신고 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참가자가 많은 그룹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신고를 하겠지, 하고 무심하게 넘겨버렸던 것이다. 

군중의 속성은 이처럼 양면적이다. 군중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투표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데에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심리 탓도 있다. 하지만 투표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지하철역 앞에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상인들과 악수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씻고 안면을 바꿀 것이다. 그들은 다시는 머리 숙여 인사하지 않을 것이고, 지하철을 타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는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고,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에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들의 못된 습성이 살아나지 않도록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여차하면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핏대를 올릴 사람들이다. 그러니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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