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에 묻혀

엄한정(1936~ )

생시에 손 한 번 잡아드릴 일이지
어버이를 여의고
산소에 손질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 앞에 회한의 잔을 올리고
돌아서는
내 어깨에 무겁게 얹히는 손
당신이 지켜보는 환영 앞에서
그 앞에 엎드린 조그만 효성은
오월의 무성한 망초꽃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시평] 

어버이를 여의고, 어버이를 그리워하며 어버이 산소를 손질한다. 아무리 손질을 해도, 그래서 어버이 산소를 말끔하게 해놓아도, 왠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버이 살아생전에 못해드린 것만 자꾸 마음에 떠올라 손질을 하면 할수록 회한의 마음만 들곤 한다.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마음은 다 이런 것이리라.

망초꽃들이 한창 피는 오월 어느 화창한 날. 어버이 산소를 찾아 손질을 하고, 어버이 그리움과 아쉬움을 함께 담아 잔을 올린다. 잠시 어버이 생각에 멍했던 마음 다시 추스르고는 어버이 산소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우리들. 그 시간에도 어버이의 그 따뜻하고 묵직한 손, 돌아서는 우리들 어깨에 문득 얹히는 듯하구나. 

애들아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잘 있단다. 아무러한 걱정 말거라. 언제고 들리는 듯한 어버이의 그 따뜻한 마음의 묵직한 그 손, 언제고 우리 일상의 축 쳐진 그 어깨 위에 얹히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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