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총선일이 이틀 앞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선거가 국민의 관심거리는 되겠지만 생각할수록 골치 썩히는 정치이야기보다는 타는 듯한 봄날에 봄노래가 어떨까 싶어 소싯적에 불렀던 ‘그리운 강남’을 생각해냈다. 그렇지 않아도 삼월 삼짇날을 지낸 바로 뒤끝이라 이제 제비가 곧 돌아오겠거니 하면서 노래를 불러보았다. 사실 이 노래는 어린 시절에 즐겨 부른 동요이긴 하지만 그 때에는 노래제목도 몰랐고 누구로부터 배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정(正)·이월이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

알고 보니 4절까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절 밖에 몰랐고, 누가 작곡하고 또 불렀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는데 최근에야 자료를 찾아본즉 ‘내로라’ 하던 실력자들이 함께 만든 이 노래는 얽힌 사연도 많았다. 가사는 김형원 시인(1900~?)이 1929년 작시한 것으로 그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시작해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인물로 1949년에 공보처 차장을 지냈으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설에 의하면 납북된 후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운 강남’이란 시는 1929년 이화여전 성악가 안기영 씨에 의해 곡이 붙여졌고, 1934년 5월에야 신민요로서 빛을 보았다. 당시 유명 가수 왕수복, 김용환, 윤건영 세 사람이 불렀는데 그중 왕수복은 기생 출신으로 최초의 대중가요를 불렀고 30년대 가수왕으로 통했던 유명한 가수였다. 세 가수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가사 내용의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민족저항 노래로 비쳐져 일제에 의해 금지되기도 했다.

해방이후에는 동요 또는 가요로 인기를 끌었는 바 현재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즐겨 불렀던 노래다. 그러다가 1965년 3월경 작사자 안기영이 월북자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가 1988년에야 복권이 된 ‘그리운 강남’은 현재에도 계속 불려지고 있다. 필자가 회상컨대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로, 지금도 그 모습들이 떠오르는데 그래서인지 봄이 찾아오는 시기마다, 또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이 지나 제비가 돌아올 때쯤이면 무의식처럼 입에서 튀어나오는 옛 노래이다.

엊그제 삼짇날이 지나 봄기운이 왕성한 호시절이니 이제 곧 제비가 우리 주위에 나타날 것이다. 제비가 강남 갔다 돌아오고, 노래 제목도 ‘그리운 강남’이니까 강남이 어디일까 호기심이 날 만한데 지금껏 그 지역을 모르고 지내왔다. 바쁜 세상에서 그냥 ‘강남’이면 됐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됐지 구태여 신경 써가며 자세하게 알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하고 지나쳐왔지만 내친 김에 제비가 겨울지내기 하러 떠난 곳이 어디쯤일까 관심을 가져본다.

제비가 추위를 피해 찾아간다는 ‘강남’은 도대체 어디일까. 대체적으로 아는 상식으로서 중국의 양자강 이남을 ‘강남(江南)’이라 하지만 그곳은 남쪽지방 따뜻한 지역인 만큼은 틀림없을 것이다. 학자들은 제비가 겨울나기를 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일본 오키나와 남쪽이나 태국이라고도 하고, 더 멀리 호주나 뉴기니아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이 노래가 작시된 시기가 1929년으로 그 때는 지금처럼 세계지도나 외국에 대한 정보가 어두웠을 시절인데 석송 김형원 시인은 용케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고 했으니 그의 안목이 빼어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석송 시인이 ‘그리운 강남’이란 시를 지을 때 어디를 강남이라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강남은 어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따뜻한 곳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노래 4절인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 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의 내용으로 인해서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 제목인 ‘강남’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시에 흐르는 정서는 정·이월 어려운 추위를 이겨내고서, 즉 일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발이 상해도 뭉쳐서 그리운 곳, 따뜻한 곳으로 가자는 뜻이니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실 ‘그리운 강남’ 노래는 3월의 노래가 아니고 4월의 노래다. 그것은 음력 사용이 상용화되던 1920년대 말에 작시(作詩)돼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했으니 지금의 절기를 맞춰보면 삼월 삼짇날을 지낸 4월 초·중순이 된다. 어쨌든 강산에 4월이 찾아왔다. 이제 곧 반가운 제비 모습도 보일 테고 봄은 더욱 무르익어 갈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의 선조들이 광복을 위해 뭉치고 의지했던 그 노래처럼 상(傷)해도 발이니 가면 가는 것이니 우리도 제비 떼 뭉치듯 뭉쳐서 아픈 발이라도 끌면서 강남아리랑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곳은 분명 혼탁과 권력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민의와 인간 향기가 가득 배어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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