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주 교수(공주대 유아교육과)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았다. 설이 되면 길사정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부모를 찾아 가서 세배를 드리고, 즐거운 명절을 보내고자 하는 강한 효심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민족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요즘은 도로가 새로 많이 개설되어서 꽤 시간이 단축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10여 시간씩 도로 위에서 보내면서까지 고향이나 조상과 부모를 찾아가는 정성과 의지는 실로 놀랄 만한 일이다.

설은 부모와 형제, 자매 등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즐거움도 주지만, 명절이라서 겪는 신드롬도 있다. 일 년 내내 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는 차례 상차림은 물론이고 명절이 되어 모처럼 찾아온 남편의 형제, 동서와 조카들의 매끼 식사 준비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신경이 쓰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시동생과 시누이들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친정에도 가지 못하면서 하루 종일 주방에 묶여있는 경우도 있다. 명절 때 잠깐 부모를 찾아오는 동서(同壻)들은 주방 살림을 잘 알지 못하니 늘 일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에게 몰린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하는 아들이나 며느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일 년 중 부모 생신과 명절날만 잠시 다녀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명절이 되면 부모에게 용돈도 드리고 이런 저런 선물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현명해서 여러 아들, 며느리와 딸, 사위들을 잘 배려할 줄 알지만, 일부 부모들은 자신을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가 일 년 내내 잘 하다가도 어쩌다 한 번 잘못하면 크게 섭섭해 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늘 효도하다가도 어쩌다 한 번 못하게 되면 평소 며느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 어긋나게 됨으로써 그동안 며느리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는 부모에게 잘 하지 못했던 며느리가 어쩌다 한 번 명절 때 효도하면 크게 감동받는 경우가 있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 Effect)’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은 자녀교육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요즈음과 같이 한두 명의 자녀만 두고 있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 자녀가 어릴 때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례가 많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당연히 배우는 것도 그 전에 없었던 특성이나 능력이 새로 길러지는 것을 보면 자기 자녀가 천재성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고, 어쩌다 발달단계보다 빨리 글이라도 읽고 쓰거나 영어 단어 하나만 말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가 나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가지고 있는 실제 능력보다 기대수준을 높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부모들이 실망하게 된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가지는 기대치 위반 효과는 자녀가 커 가면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이런 결과 자녀가 청소년이 된 후 학교 성적이 떨어지게 되는 등 부모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보이게 되어 자녀 스스로 자책감을 가지게 되거나, 부모와 심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현실적인 기대수준을 가지거나 오히려 자녀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어 자녀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게 하는 현명한 부모도 있다. 이런 부모는 언제나 자녀를 능력 있는 존재로 보고, 늘 깊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게 된다. 작은 성취에도 긍정적인 평가로 늘 칭찬을 함으로써 자녀로 하여금 자신감과 적극성을 가지게 하여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 시기에 가면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스스로 가치 있는 생활을 설계하고, 또 실천해 나가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가지는 기대수준이 부모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도 하고, 또한 자녀의 인생을 성공하거나 실패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사고(思考)의 비약일까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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