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로 등장하는 유아인의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로 실감난다. 골프채와 야구 배트로 부하 직원들을 두들겨 패고 사람을 때려죽이기까지 한다. 마약을 하고 연예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사나운 개로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과연 그것들이 실제로도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영화 속 장면들은 살벌하고 끔직하다. 하지만 6년 전 쯤 어느 대기업 재벌 2세도 영화 속 장면처럼, 개로 여직원들을 위협하고, 삽자루와 곡괭이 자루, 야구 방망이로 사람을 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영화 속 장면은 현실의 날것 그대로였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의로운 형사(황정민)가 막 돼먹은 재벌 2세를 혼내주고 그래서 관객들은 대리 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재벌 2세에게 억울하게 맞은 사람이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귓등으로 들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했으며, 우리 바람과는 달리 공정하지도 않았고, 영화처럼 결말이 통쾌하지도 않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의 엉덩이를 골프채로 내려치고 직원들을 도로변에 줄지어 엎어 놓고 몽둥이를 휘두른 재벌 2세는 경찰서에 불려 나오면서, 사회를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맞은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고 사과를 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회사에서 직영식당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머슴은 잘 먹여야 일을 잘 한다”고 말했다.    

국가부도 위기 사태 때 한보 그룹의 정태수 회장이란 자가 청문회에 나와 “머슴이 뭘 알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그 회사 전문 경영인을 머슴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 회사에는 일류 대학 출신의 박사, 부장 검사 출신 변호사, 머리 좋다고 소문난 회계사 등이 집사로 밥을 먹었다는데, 그 사람들도 머슴처럼 막 불렀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선량한 직장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슴 신세인 자신의 처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피자집에서 난리가 났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진 피자집 사장이 기분 나쁘다며 ‘머슴’을 때렸다고 한다. 예전부터 폭언과 막말을 예사로 해왔고, 협약도 마음대로 파기하고 부당하게 폭리를 취했다고도 한다. 점잖고 선량한 사업가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CEO 외 또 다른 그의 공식 직함은 CLO(Chief Love Officer), 즉 사랑전도사다. 월요병을 없애기 위해 월요일 출근시간을 1시간 늦추고 직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명시(名詩)를 읽어주기도 한다. 직원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먼저 직원을 사랑으로 대해야 직원도 고객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의 직원 조회는 ‘우리는 하늘 아래 하나다’라는 뜻의 ‘우하하 월요일’이고, 이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

동학 교주 최제우는 인시천(人是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가르쳤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곧 하늘을 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세가 있고 돈이 있다 해서 함부로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 천벌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 된다. ‘머슴’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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