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산동성의 성도 제남은 수많은 샘과 대명호라는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수옥천(漱玉泉)은 송대의 유명한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와 인연이 깊다. 그녀는 수옥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샘물을 거울로 삼아 화장을 했다. ‘수옥천’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세설신어(世說新語) 배조(排調)’에 나오는 ‘수옥침류(漱玉枕流)-샘물이 솟아나는 소리가 마치 옥돌을 씻는 것과 같다’라는 글귀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다. 맛깔스러운 운치가 돋보인다. 다른 하나는 치아가 옥과 같은 여인이 이곳에서 늘 양치질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은 이청조의 ‘수옥집’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샘의 둘레에는 백옥으로 만든 난간이 있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백옥으로 둘러싸인 샘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맑은 물속에는 비단잉어가 놀고, 샘가에는 청송과 취죽이 단아한 자태를 뽐낸다. 동쪽 기슭에 세워진 비석에 있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네 글자는 수옥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솔개가 나는 것은 고기가 뛰어오르기 때문이라는 뜻일까? 솔개가 나니 물고기가 놀라서 뛴다는 뜻일까? 수정으로 발을 드리운 것처럼 맑은 물이 하얀 석벽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바라보면, 한 조각의 구름이 어지럽게 돌 위로 몰려드는 것 같다. 주희(朱熹)가 멋들어진 솜씨로 쓴 휘호의 내용이기도 한 ‘연비어약’은 우리나라의 학자나 문인은 물론 서예가들이 좋아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연비어약’은 원래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의 다음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연비려천(鳶飛戾天), 어약우연(魚躍于淵).
기제군자(豈弟君子), 하불작인(遐不作人).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는데,
점잖은 군자께서 인재를 잘 쓰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시경’의 ‘연비려천, 어약우연’을 가장 기발하게 번역한 분은 조선 중기의 한강(寒岡) 정구(鄭逑)이다. 세자를 상대로 한 경연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했다.

‘소리개는 하날 우에 퍼더덕 날아가고, 괴기는 쏘 밑에서 풍덩슬 뜨는구나!’

세자는 너무 우스워서 폭소를 터뜨렸다. 불쾌해진 정구는 사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한탄하며 경연을 거절했다. 임금이 정중하게 사죄하고 다시 부탁했다. 정구가 다시 풀이하자 임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율곡 이이는 19세에 금강산 마하사에서 노승 의암(義庵)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써주었다.

연비어약상하동(鳶飛魚躍上下同), 저반비색역비공(這般非色亦非空).
등한일소간신세(等閑一笑看身世), 독립사양만목중(獨立斜陽萬木中).
솔개 날고 물고기 뛰는 것은 상하가 마찬가지,
이는 반야경의 색도 공도 아닙니다.
문득 한 번 웃고 세상을 둘러보니,
홀로 석양이 비치는 숲 속에 있습니다.

의암이 ‘금강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해당하는 개념이 유가에도 있느냐고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알려졌다. 율곡은 소박한 실천철학인 유학으로는 궁극적인 의문을 풀지 못해 불교를 찾았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불교의 심오하고 광대한 철학은 인정했지만, 당면하고 시급한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은 그들의 당면한 삶의 문제이지,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극단까지 확대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공간을 좁혀 당면한 문제에 천착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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