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지원 유도 목적 `연출설'도
(서울=연합뉴스) 북한을 방문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먼 함흥까지 찾아간 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신화통신은 9일 오전 평양발로 중문 기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우호방문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표단을 만났다"며 면담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반면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면담 장소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면담 내용도 비교적 간략히 전해 묘한 대조를 보였다.
방북 둘째 날까지 왕 부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셋째 날인 8일 새벽 김 위원장이 함흥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오면서 일부 부정적인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왕 부장이 평양에 머물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승용차로 5시간 거리인 함흥에 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외국인사 면담을 목전에 둔 동선으로 해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왕 부장과 면담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돌았다. 중국 측이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고 나설 것이 뻔한 상황에서 `선(先) 유엔제재 해제'를 요구해온 북한으로서 대응이 옹색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런 맥락에서 면담 직후 중국 신화통신과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는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내 주목된다.
신화통신이 "한반도 핵 문제를 타당한 방식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는 후 주석의 구두친서 내용을 공개한 반면 중앙통신은 후 주석의 친서 내용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채 6자 당사국들의 진정성을 강조한 김 위원장 발언만 전달한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함흥 면담'에 대해, 왕 부장이 고집을 부리는 김 위원장을 함흥까지 따라가 애써 설득한 상황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동국대 북한학과의 김용현 교수는 "6자회담을 적극 추진하기에는 아직 여건이 덜 돼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불만을 섞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꼭 중국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미국 등 다른 관련국들에게 동시에 보내는 메시지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김 위원장이 몸소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중국 측에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함흥 면담'이 연출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화폐개혁 이후 각종 재화의 공급경색을 풀기 위해 중국의 대규모 원조가 절실하다는 사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외교관례를 깨가며 왕 부장을 함흥까지 오도록 유도한 게 아니냐는 논리이나 설득력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