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정당이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국민 인식에서 정당은 정치놀음이나 하고 쓸데없는 당내 분쟁만 일으키며 타 정당 간 대척관계를 이루고 있는 무용성(無用性)의 정치집단 정도로 치부된다. 정치에 관심 있는 자라도 우리나라 정당이 몇 개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다. 그것은 정당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자신들만의 소유물이나 도구로 착각하고 있는 점에서도 기인된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 수는 무려 27개이다. 지금이 한창 선거철이라 정당 명칭들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어 유권자들은 몇 개 정당 이름을 대충 알 테지만 평상시 같았으면 원내정당, 그것도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도에 그치고, 더 관심 있는 자라면 정의당까지 4개 정당은 알 수 있겠다.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 탈당한 국회의원이 원외정당에 입당함으로써 원내정당은 기독자유당과 민주당이 더 늘어나게 됐고, 원외정당은 22개로 줄어들었으나 그 숫자와 이름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당이 많다고는 하나 4년 주기로 정비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후보자를 낸 정당이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유효투표총수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할 경우 정당법에 의해 등록이 취소된다. 중앙선관위에서는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정당에 대해 등록 취소해 정당의 숫자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번 19대 총선 결과 16개 정당이 사라졌지만 이번에도 원외정당, 군소정당의 목숨줄이 유권자 손에 달려있다 해도 빈말이 아니다.

이같이 선거로 명암이 갈리는 게 정당이다. 사라지고 또 새로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정당을 보며 애환을 느끼기도 한다. 필자는 과거 정당에 몸담은 적이 있기에 한국 정당제도와 운영 등에 관해 관심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시간 날 적마다 정당의 기본가치인 국민의 건전한 정치적 의사형성을 위해 정당 본모습들은 어떻게 투영돼야 하는가에 대해 숙고도 하며, 정당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국민이익’을 저버리는 행태를 보일 때 본란에서 질책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정당은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므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나라의 축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정당은 정당국가적 경향을 띠어온 제3공화국 이래 반세기 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책임이 위정자들에게 있기는 했지만 따져보면 정당 자체에 있고, 당 지도부에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민의 자발적 조직체이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당연히 국민임에도 그 권리를 잠시 위임받은 당 지도부가 당 전체를 좌지우지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정당에서 나타나는 운영상의 폐해는 정당이 마치 국회의원의 전유물이고 그들이 활동하는 터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인데, 정당운영에서 의원 중심으로 되니 국회활동인지 정당활동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오래전부터 ‘정치혁신’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구태의연한 정치상을 변혁하자는 것이고, 정치인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쇄신하자는 것인데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속이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정치계에서 국가조직으로서, 국회와 국민의 자발적 조직체로서 정당을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현역 의원들이 지도부를 장악하고, 당 운영을 좌지우지하면서 국회 원내 위주로 이끌고 있는 바, 그렇기 때문에 정당제도 자체의 장점들이 쉽게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각 정당의 당헌에서 규정한 바대로 원내의원들은 정당 제도나 운영상에 있어 하나의 기구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다.

이쯤에서 현대민주주의 하에서 제대로 된 정당의 본 모습을 그려본다. 민주주의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 즉, 인민(人民)이 그 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의 다양한 욕구로 인해 갈등이 상존하게 되는 바 그 갈등 자체가 국가·사회의 마이너스적 요소로만 기인되는 게 아니며, 잘 관리해 국가·사회와 구성원의 이익으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최적의 담당자가 바로 정당이라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민주주의의 엔진은 갈등’이라고 설파한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1892~1970)를 떠올려보며, 갖가지 갈등들이 얽히고설킨 우리 사회에서 정당이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국민이익을 담보하는 등 제대로 된 존재성을 보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다. 총선에서 각종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계기로서 우리 정당의 좋은 활동을 기대하지만 매번 선거 때마다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맞췄을 뿐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적은 없었다. 그 책임이 원천적으로는 정당 자체에 있겠지만 정당이 자발적인 국민결사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국민도 무관하진 않을 터, 우리 사회에서 정당의 존재 내지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좋은 정당이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현대사회에서 정당 가입률 10%대 초반에 머물고,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며 정당 내부통제는 마다하는 한국사회는 과연 ‘좋은 정당’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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