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 벽골제 5대 수문 중 하나인 ‘중심거’ 조사 후 전경 모습 (제공: 문화재청)

김제 벽골제 수문 ‘중심거’ 형태·구조

벽체 유실 막으려고 직사각형 화강암 석축 쌓아

침하 방지 위해 할석 무질서하게 놓아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그 제방의 길이가 1천8백보였다.’

이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에 대한 기록이다.

고대 저수지로서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뿐 아니라 토목사에서도 중요한 벽골제. 벽골제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최고이자 최대의 수리시설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에서는 벽골제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재)전북문화재연구원이 지난달 벌인 벽골제 제6차 발굴조사에선 제방의 수문(水門) 중 하나인 중심거(中心渠)의 형태와 구조, 축조 방법이 확인됐다.

중심거는 제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수문이다. 잔존 규모는 길이 1770㎝, 너비 1480㎝이다. 현재 양쪽에 있던 돌기둥은 상단부가 훼손돼 너비 83㎝, 두께 70㎝ 크기의 하단부만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양 돌기둥 사이의 바닥엔 길이 420㎝, 너비 84㎝의 하인방석을 놓았고 중앙엔 나무판을 삽입할 수 있도록 ‘凹’자형의 홈을 팠다. 돌기둥과 하인방석은 ‘凹’자와 ‘凸’자의 형태로 맞물리게 연결돼 있다.

물을 내보내는 길인 도수로엔 100~200㎝ 정도의 크기로 잘 다듬은 직사각형 화강암 석재를 이용해 석축을 쌓았다. 물이 흘러나갈 때 벽체가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북측에 길이 1140㎝, 너비(중앙 부분) 420㎝ 규모의 2단 석축만 남아있다.

도수로의 바닥은 침하 방지를 위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사람 머리 크기의 할석(깬돌)을 무질서하게 쌓고, 그 위에 100~150㎝ 크기의 화강암 석재를 이용해 박석(薄石)을 깔았다. 도수로 외부는 방수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八’자형으로 벌어지게 처리했다.

중심거에서 확인된 수문의 형태는 중국 상해 오송강(吳松江) 하구부에 위치한 지단원원대수갑유적(志丹苑元代水閘遺跡)과 유사하다. 지단원원대수갑유적은 1400년대에 조성된 원나라 수문이다. 제방 성토공법 기술인 부엽공법(나뭇가지,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방식)은 벽골제보다 후대에 축조된 일본 협산지(狹山池)에서도 확인된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벽골제 제방 성토공법과 수문 축조기법이 한·중·일 수리시설 간의 비교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벽골제에는 총 5개의 수문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벽골제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장생거(長生渠), 경장거(經藏渠) 등 2개의 수문만이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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