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직업공무원들의 소신 없는 갈지자 행보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이 새 정권 들어 바뀔 경우 전 정권에서 문제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던 고위공직자들이 아무런 해명 없이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새 정부의 전도사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등 2번의 정권교체기에 이 현상이 빚어졌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보다 이번 이명박 정부 들어 직업관리들의 자기부정 행태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들을 더 강하게 잡도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새 정부 들어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 시리즈가 줄을 잇고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신조어는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 2008년 1월초 대통령직인수위가 국정홍보처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인수위 전문위원이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을 따지자 국정홍보처의 한 공직자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말한 것이 그 시초다. 언론이 붙인 게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별칭을 단 것이다.

이 ‘영혼 없는 공무원’들 중 최고의 인물이 최근 등장했다. 일부 언론으로부터 ‘영혼 없는 공무원의 멘토’라는 칭호까지 얻은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세종시 원안을 ‘사회주의 도시’에 빗대 야당은 물론 충청도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그는 3일 열린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모임 ‘함께 내일로’의 토론회에 참석해 “도시 전문가들 말로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면 사회주의 도시’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과천·대전 등에 정부부처가 있지만 정부청사 때문에 지역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은 못 들었다”며 “정부가 가면 발전한다는 것은 관 주도적 사고”라고도 했다. 그는 한 술 더 떠 노무현 정부 시절을 회상하며 “부처 이전이 이뤄질 때면 (나는) 공무원을 안 할 테니까 ‘나는 모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다”며 “2005년에 내가 했던 실수를 하지 말고 의원 여러분이 사명감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어차피 정운찬 총리야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판한 ‘세종시 구원투수’를 자임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권 실장이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과거정권을 부정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그냥 바라보기엔 심사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권 실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행시19회에 합격, 재무부 사무관으로 관계에 입문했다. 동기들에 비해 좀 늦은 나이였으나 5․6공시절에는 정통TK(대구경북)답게 관리로서는 잘나가는 편이었다. 누구나 근무하고 싶어 하는 청와대 근무도 1989년, 1997년, 2001년 등 세 차례나 한데 이어 참여정부 들어서도 2004년 6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실 산하 정책기획 비서관과 경제정책 비서관으로 재임했다.

그는 청와대시절 건설교통부를 관장하는 산업정책비서관실이 세종시 문제를 맡아서 세종시 원안 작업에는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맡았던 직책은 경제정책 관련 국무회의 업무를 총괄하는 경제정책수석실의 선임비서관이어서 자연히 세종시 업무를 정확히 꿰뚫어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처럼 세종시 원안이 ‘문제투성이’임을 확신했다면 당연히 당시 이 같은 문제제기를 했어야만 했다. 그는 업무상 그 같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멘토였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경북대 교수)과 고교, 대학동기다.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라고 한다. 그 중 한명은 노 대통령 추모사업에 참여하는 등 노 대통령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데 반해 한 명은 폄훼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칼 하기만 하다.

나는 권실장이 영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소신에 기반해 태도를 표변했길 바란다. 새 정부 들어 고위직 영전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또 한 명 더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를 또 슬프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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