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자기생각에 염색(染色)된 시대가 드리는 부활절기
[천지일보 시론] 자기생각에 염색(染色)된 시대가 드리는 부활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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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3월 27일) 한국교회는 부활주일을 맞아 분주했다. 온 단체와 교회마다 부활절 예배로 이천년 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했다.

먼저 ‘부활절(復活節)’이란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부활(復活, 再生, revival)’이란 ‘다시 살아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활 즉, 다시 산다는 의미는 먼저 ‘죽음’이 전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천년 전에는 부활이 있다는 바리새인들과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 간에 논쟁이 있었으며, 나아가 누가복음 20장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부활 논쟁하는 내용이 잘 기록돼 있기도 하다. 이처럼 부활에 대해선 이천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신앙인뿐만이 아니라 비신앙인조차도 늘 논란의 중심에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했듯이, 예수는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 부활 승천했고, 이를 보고 확인한 제자들이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 증거해 온 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며, 또 그들이 오늘날 부활절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는 자체가 그 복음을 믿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천년 전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고, 부활을 믿는다고 하던 그들이 부활의 주체인 예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 했듯이,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신앙인들이 실상은 부활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하기도 하고 해괴하기도 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천년 전,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부활이요 생명”이라 했고,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생한다고 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과 산 자의 부활 두 가지를 약속으로 남겼다. 그것이 곧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 된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는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이율배반적이며 모순된 신앙의 행태는 그대로 유전돼 오고 있다. 그 증거는 예수를 믿는 신앙인들이 믿고 있는 영생관은 오로지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뿐이라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말한 부활은 부활의 때가 따로 있음을 함께 알리고 있으니, 곧 신약(새언약)이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다. 지금까지 부활한 사람이 없는 것이 또한 약속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죽어서 천국 간다는 믿음은 반쪽 믿음이며 결코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으며 거짓 믿음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은 영생 즉, 부활과 생명이라는 진리를 말하면 이단이고 귀신들린 자로 취급하며 핍박한다는 것이다.

‘종교(宗敎)’를 영어로 써 보면 ‘religion’이다. 이는 끊어져 있던 것을 ‘다시 연결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사연 즉, 죄로 인해 생명이신 하나님이 떠나가니, 떠나간 그 자리에는 사망 즉, 죽음이 찾아 왔으며, 오늘날까지 사망이 왕 노릇 해 온 이유다. “죄 값은 사망”이라는 말처럼, 이 죄와 사망을 없애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한 대로 예수를 보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얻게 됐다. 하지만 이천년 전, 예수께서 피를 흘렸다 할지라도 당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구원받았다’ ‘죄 사함 받았다’ 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며 하나님과 예수님과 선지사도들의 말씀을 오해한 까닭이다. 그 피는 예수께서 유월절날 밤 제자들에게 “언약의 피”라 했으니 곧 약속이며, 약속은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가 됐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흘리신 피의 효력은 나타나게 되니 바로 오늘날이다. 따라서 오늘날은 이천년 전 유월절 밤에 제자들과 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고, 그 약속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릴 때, 믿고 그 앞으로 나아 온 자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하게 되니 곧 생명이 다시 찾아온 것이며, 신앙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같이 약속이 때가 되어 이루어지고, 그 이루어진 사실을 알릴 때, 듣고 믿어 나아온 자들이야말로 이천년 전 하신 약속을 믿는 자들이며,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참 믿음이다.

이로 보아 기독교의 부활사상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교리라기보다 지구촌 모든 종교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소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신앙인을 넘어 온 인류가 바라고 소망하는 최고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 많은 신앙인은 물론 많은 단체가 부활을 말하고 부활절 기념예배를 드리지만, 부활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참된 소망이 없는 기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예수 구원, 불신 지옥’이라는 슬로건만으로는 부활의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책망을 겸손한 자세로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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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9 23:33:59
신이 없는데도 성경이 이루어진다는것은 참 생소하다
성경이란걸 믿는것도 참 아이러니 하고
그리고 부활절에 계란 삶아서 주는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부활이라며? 계란은 왜 삶아서 줘?
보통 상식으로 생각해도 생걸 줘야 부활의 의미가 맞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