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비양 양동기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카페 ‘가비양(GABEE YANG)’ 양동기 대표 인터뷰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이세돌9단과 대국에서 승리한 알파고가 바리스타에 도전한다면 어떨까. 2:2:3 비율의 커피머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맛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바리스타 말이다.

고급커피 전문 카페 프랜차이즈 ‘가비양’ 양동기 대표는 “어쩌면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실제 양 대표는 97년 커피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일본의 한 전자대학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했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할 수도 있겠으나 “글세, 아직 바둑 보다는 어렵지 않을까”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좋은 커피를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최적의 생두 보관 창고 ‘커피셀러’를 운영하는 등 커피 품질에 끊임없이 욕심을 내왔다. 또 20년간 커피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7000여명의 교육생을 통해 품질 좋은 커피 공급을 위해 노력했다.

남들은 커피 한 잔을 팔기 위해 바쁘다면, 양 대표는 커피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커피를 판다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그도 “우리 가비양은 커피회사라기 보단 맛을 만드는 회사라고 정의했다. 맛에 집중했고 그 도구가 커피가 된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향이 살아 있는 좋은 커피는 와인잔에 담아 마시면 커피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잃어버린 ‘맛’의 비밀

양 대표는 가비양의 메인테이블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커피를 와인 잔에 담아 맛보게 한다. 와인 잔은 일반 찻잔보다 커피 향을 더 잘 맡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사람이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상태에서 갈은 양파를 맛보게 하면 양파를 ‘딸기잼’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는 실험 결과처럼, 맛을 볼 때 후각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혀로 느끼는 미각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등 그 영역이 제한적이라면 거기에 후각의 능력이 더해지면서 훨씬 많은 종류의 맛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인이 사실은 이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한다는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매운맛’ 때문에 ‘미맹(味盲)’에 노출됐는데 그 원인으로 ‘고춧가루’ ‘마늘’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즈음 들어온 고춧가루의 영향으로 음식 맛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했다. 고춧가루로 만들어진 ‘매운맛’ 음식들이 우리의 미각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매운 맛이 미각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으로 분류된다. 혀가 아픔을 느끼는 것을 ‘맵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혀가 아프게 되면 뇌는 강력한 마취제인 엔도르핀을 생성해서 통각에 대한 방어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매운맛 때문에 마취된 혀가 음식 맛을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또 혀의 세포가 미처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 매운 것을 반복해서 먹게 되니 한국인은 ‘미맹’의 상태에서 사실상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는 또 매운맛 때문에 혀의 미각이 떨어지면서 문화가 획일화되기 시작했다고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매운맛에 취한 혀는 단백한 차와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다과 앞에 모여 나누던 대화도 점점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맛에 대한 표현이 줄어들면서 다양한 욕구가 반영된 문화도 같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공감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양 대표가 제시하는 증거는 이것들이다. 도수만 다르고 맛은 같은 소주. 심지어 따라 마시는 술잔도 다 똑같이 생겼다. 취미는 대부분 등산과 낚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그때마다 차려 입는 옷 스타일도 엇비슷한 아웃도어로 대표된다.

이 같은 양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고춧가루’ 덕에 어느 노래가사처럼 모두가 똑같은 ‘네모난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꽃과 허브향이 나는 ‘진짜 커피’

▲ 은 주전자에 담긴 커피에 맞는 온도의 물로 드립커피를 뽑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양 대표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 ‘행복한 사람들’이 되려면 먼저 이 ‘혀’부터 살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운맛을 자제하면 미각이 살아날 터. 그러니 ‘고추가루’ ‘마늘’에 푹 젖어있는 매운 음식에서부터 해방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국인에게 파, 마늘, 고추는 양념의 기본이기도 하고 한 번씩 땡기는 ‘매운맛’의 유혹을 끊어버리면서까지 찾아야 할 그 ‘맛’은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곧 양 대표가 권하는 와인 잔에 담긴 커피를 커피 향과 함께 마셔봤다. 기자도 평소 고춧가루에 양파까지 덤으로 좋아하는 매운맛 마니아라 “나도 미맹이면…”이라고 의심스러워하며 커피 맛에 집중했다.

과연, 양 대표가 권한 신선한 드립커피는 갓 따른 탄산수에서 스파클링이 터지듯 각양각색의 맛을 선사했다. 혀를 살리자는 다소 엉뚱했던 그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양 대표는 물었다. “어떤 맛이 나나요?” 기자가 대답했다. “아, 신맛도 나면서도 끝은 달고 그 다음에 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도대체가 처음 보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웃으며 대신 답했다. “꽃과 허브, 신선한 귤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신맛도 느껴질 겁니다. 집중하면 캐러멜, 초콜릿, 너트 맛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커피 맛이죠.”

◆좋은 커피는 인생과 닮아

▲ 가비양 양동기 대표가 시음할 드립커피를 와인잔에 조금씩 따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양 대표는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좋은 커피를 찾아 세계 곳곳의 농장을 들른다. 좋은 커피는 천 가지 이상의 맛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 커피는 1500미터 이상의 높은 고지에서 매우 거친 자연 환경을 견디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어떤 농장의 환경은 낮엔 30도까지 올라가고 새벽엔 영상 10도 아래로 막 떨어지는데, 커피나무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자라게 되죠. 커피는 추울 때 시고 더울 때 단 맛을 내는데 그 다양성이 극대화 되는 겁니다.”

많은 시련을 겪어낸 커피나무가 훨씬 더 다양한 맛을 낸다는 것이 어째 사람의 삶과 닮아있는 것도 같다. 그 섬세하고도 오묘한 ‘맛’을 알게 될 때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양 대표가 말하고자 하는 맛에 대한 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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