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노드라마 ‘빌라도 보고서’에서 빌라도 역을 분한 배우 박민관이 다양한 표정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뉴스천지)
 

예수 ‘죄 없다’ 판결한 빌라도
“난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야훼 섬긴다며 예수 죽인 유대인
“그 피를 우리와 자손에 돌리라”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2000년 전 빌라도가 살아 돌아와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현대인들 앞에 서서 자신을 변호하고 나섰다. 수년 전 로마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빌라도 보고서’가 모노드라마로 탄생했다. 당시 로마 총독으로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의 죽음과 얽히게 된 억울함과 죄 없는 예수를 죽이는 것을 승인해야 했던 빌라도의 고뇌가 고스란히 무대 위로 옮겨졌다.

빌라도 역을 분한 배우 박민관은 그러한 빌라도의 심정을 온 몸을 이용해 표현했다.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의한 악랄한 유대인 지도층을 향해서는 칼날 같은 눈빛으로 화살 같은 비판을 쏟아냈고, 가이사 왕을 향해 보고할 때에는 한마디도 거짓이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얼굴을 했다. 또 민란이 일어날까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는 판결을 내릴 때에는 무죄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데 대한 고민과 연민으로 눈물을 흘렸고, 얼굴은 일그러졌다. 빌라도의 고통을 온 몸으로 묘사한 그가 연기를 마칠 즈음에는 그의 얼굴이 눈물과 땀으로 범벅됐다.
 

▲ 모노드라마 ‘빌라도 보고서’에서 빌라도 역을 분한 배우 박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해 5월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2주 연장 공연을 올렸던 모노드라마 ‘빌라도 보고서’다. 이번엔 대학로로 장소를 옮겨 부활절을 낀 3월 15일부터 4월 3일까지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빌라도의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변호에 관심을 보였을까.

짧게는 1500년 길게는 1900년이 가깝도록 거의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고난 받게 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은 악독한 로마 총독으로 인식됐다. ‘로마신조’에서 유래한 개신교인들의 신앙 고백문인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문구가 있었고,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개신교인들은 이를 마음에 둔 것이다. 마치 빌라도가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인 것처럼 말이다. 사도신경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알게 모르게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전부 떠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이 사도신경을 예배 때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니, 빌라도가 억울할 만도하다. 교인들은 보고서에서 밝힌 빌라도의 심경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도신경과 대치되는 장면은 비단 빌라도 보고서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 당시 사건을 기록한 신약성경 사복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요 18:31)’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마 27:24~25)’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시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마 27:19)’

이렇듯 성경에 기록된 빌라도의 모습은 빌라도보고서에 담긴 내용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평소 성경을 유심히 살피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빌라도보고서를 관심 있게 본 이유가 되기도 했다.

감신대학교 이정배 교수는 “예수 처형의 실권자였던 유대 총독 빌라도를 주제로 연극을 올리겠다는 말에 순간 많이 놀랐다”면서도 “이런 (빌라도)보고서가 존재한 것을 몰랐기에 신학자로서 부끄럽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 모노드라마 ‘빌라도 보고서’에서 빌라도 역을 분한 배우 박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빌라도의 보고서’는 로마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 현재 터키의 성소피아사원에 소장돼 있다. 전 50권으로 돼 있는 이 원고는 각 권이 약 60×120㎝로 돼있고 서기관에 의해 작성됐다. 이번 공연은 그 전문 그대로를 가감 없이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무대화했다. 로마의 사가(史家) 발레루스 파테쿠러스의 기록에 따르면 원제목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다.

발레루스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에 대한 유대인의 여론은 양분됐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로마의 지배와 유대인 지도층들의 착취로부터 구원해낼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층 계급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했으며 등 뒤에서 그를 저주했다. 유대인 지도층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이집트의 마술사라며 빈정거렸던 것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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