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박(朴) 선생! 엊그제 충칭여행을 끝내고 우한(武汉)으로 왔지요. 이곳까지 845㎞ 거리를 고속기차 똥처(动车)를 타고 오는 6시간 반 내내 끝없이 펼쳐지는 이국의 산천을 싫도록 구경했지요. 오는 사이에 촌락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았지만 특이한 것은 충칭에서 의창(宜昌)까지 굴이 얼마나 많던지 재미삼아 헤아리면서 왔는데 155개나 됐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부산 간 왕복거리를 기차에서 보냈으니 지루할 만도 했지만 집사람과 함께 굴 수를 세거나 유채꽃 노란 물감으로 채워진 들판 풍경을 보면서 왔으니 장시간 여행도 잠깐처럼 생각됐지요.  

지난번 소식 글에서는 지면관계로 미처 다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충칭의 유명한 음식 ‘후워구어(火锅)’라는 게 있지요. 중국에서는 대표적 서민음식으로 통하는 후워구어는 우리 음식으로 치자면 샤브샤브와 비슷하지요. 그동안 여러 차례 중국 자유여행을 다니면서 몇 번 먹어본 음식이지만 차츰 입맛에 맞는 것 같아 가끔씩 찾기도 했지요. 이번에도 후워구어집을 찾아 일부러 매운 맛 내는 식료를 건져내고 요리했음에도 얼마나 맵던지 입이 얼얼할 정도였답니다.

그건 그렇고 우한에 와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요. 우한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성도로 중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난 곳이지요. 바로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이랍니다. 당시 중국인의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 쑨원 대총통이 이끈 이 혁명으로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됐지요. 그만큼 우한이 중화민국의 주춧돌을 놓은 지역이라서 그런지 신해혁명과 관련된 혁명박물관이나 기념관들이 잘 꾸며져 있었지요. 지난번 난징에 갔을 때 찾아본 중산릉에는 참배객들이 많았는데, 중국인들의 쑨원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이곳 우한의 관광명소는 황학루와 장강대교라고 합니다. 황학루에 오르는 누각 벽에 써진 ‘천하강산제일루(天下江山第一樓)’라는 글씨가 먼저 보이는데, 그 표현만큼 이 누각은 장강 옆에 세워져 풍광이 좋을 뿐만 아니라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머물면서 천하절경을 노래했던 곳이기 때문이라지요. 우리에게도 알려진 이백, 백거이에다가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최호(崔顥)의 시가 걸려있어 누각에 올라 그 빼어난 시들을 읽어보았지요.

그중에서도 ‘… 한양수는 날 갠 시냇가에서 빛나고, 앵무섬에는 방초 가득하구나./ 날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안개 피어나는 강 위에 수심 잠기네(晴川曆曆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鄉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최호 시인의 시에서 나오는 내용처럼 안개서린 강 풍경은 꽤나 볼만한 경치였지요. 봄기운 머금고 피어나는 녹양방초(綠楊芳草)를 보고 있자니 마치 그들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면서 나그네의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춘심을 겪었답니다. 황학루를 내려와서는 장강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유명한 음식거리인 후부쌍(戶部巷)에 들렀는데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던지 가는 곳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넘쳐났지요.

朴선생! 봄이 익어가는 이때쯤이면 이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호(東湖)이지요. 중국인들이 ‘우한의 동호는 항저우의 서호(西湖)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요. 동호마산풍경구는 벚꽃으로 인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지요. 이곳 벚꽃공원은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벚꽃공원, 미국 워싱턴 벚꽃공원과 함께 세계 3대 벚꽃공원이라 불리는데, 다른 두 곳은 가보지 못했지만 동호 주변에 잔뜩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 그 거대한 숲에서 떨어져 내리는 봄날의 백설 같은 벚꽃 잎들의 흩날림을 보면서 장관(壯觀)이 따로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답니다. 

3월 초에 중국으로 자유여행을 떠나와서, 봄이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세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벚꽃 명소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 넉넉한 풍경들과 온몸으로 맞닥뜨리면서 ‘이런 기분이 있기에 힘이 들어도 낯선 곳으로 자유여행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삶의 또 다른 공간인가 봅니다. 집사람과 둘이서 하는 자유여행이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하지요. 여행지 날씨가 어떠한지, 볼거리는 무엇이 있고, 잠자리는 제대로 예약됐는지 여러 가지 여행 정보를 얻는 것은 아내 몫이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글을 써야 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부담도 따르기도 하지요.

그렇긴 해도 여행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면서 그 같은 행로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주는 묘약이기도 하지요. 중국여행이 열여섯 번째이면서 그중에서 자유여행 회수만도 벌써 여덟 번째이니 집사람은 그동안 힘들다하면서도 올가을 여행을 또 생각하면 기대에 설렌다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답니다. 그만큼 여행에서, 그것도 발품 팔아 고생하는 자유여행을 통해 얻는 인생경험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랍니다. 외국여행 중 이런저런 소식을 朴선생에게 띄우지만 자랑하고 싶음이 아니라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의 여유를 선물하고 싶어서이지요. 이 봄날에 우한의 가득 풍겨나는 방초 향기를 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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