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 한 토막. 아득한 시절, 보이오티아라는 나라에 아타마스라는 왕이 있었다. 왕의 첫째 아내는 아들 딸 하나씩을 낳았다. 그런데 왕은 아내를 버리고 새로 여자를 얻었다. 새 왕비 이름이 이노였다. 왕과 이노도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다. 왕은 행복했으나 새 왕비는 그렇지 않았다. 전처 자식들 때문이었다. 왕비는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없애 버릴까, 늘 그 궁리만 했다.  

새 왕비는 마침내 무릎을 탁 쳤다. 보리를 파종할 때가 되었고, 왕비는 볶은 보리를 남자들에게 주도록 했다. 남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볶은 보리를 뿌렸다. 볶은 보리였으므로 싹이 나지 않았다. 왕은 큰일 났다 싶어, 신에게 사자를 보냈다. 왕비는 사자를 꾀어, 전처소생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나왔다고 거짓 보고를 하라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엄마가 아들과 딸을 빼돌려 도망을 가도록 했다. 딸은 바다에 빠져 죽었으나, 아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예쁜 여자와 결혼도 하고 잘 먹고 잘 살았다.

결혼의 여신 헤라가 이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는 헤라였다. 결혼의 여신이었으니, 가정의 질서를 깨는 꼴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헤라가 보기에 아타마스 왕은 한심했고, 새 왕비는 괘씸했다. 그래, 아타마스 왕을 미치게 만들었다. 미친 왕은 새 왕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활로 쏘아 죽였다. 새 왕비는 딸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계모의 만행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다. 

그리스 신화에는 계모 이야기가 또 있다. 미궁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때려죽인 영웅 테세우스도 뱃속에 씨만 뿌려놓고 떠나버린 친아버지를 찾아 갔다가 계모의 계략에 빠져 죽을 뻔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신표로 남겨준 가죽신과 부러진 칼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계모는 쫓겨나고 말았다. 후에 테세우스의 아내 파이드라도 부적절한 감정을 느낀 배다른 아들을 모함에 빠트리는 바람에 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신화 속 계모는 늘 이런 식이다. 

독일의 그림(Grimm) 형제가 쓴 ‘그림 동화’에도 계모가 자주 등장한다. 백설공주의 엄마도 계모, 신데렐라의 엄마도 계모,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도 계모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계모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고, 어린 헨젤과 그레텔이 계모에 의해 버려지는 장면은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천벌을 받아 불로 달군 쇠 구두를 신고 펄쩍 펄쩍 뛰다가 죽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림 동화’ 1812년 초판부터 1857년 7판까지에는, 백설공주의 엄마, 신데렐라의 엄마,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가 모두 생모였다. 그런데 책이 나오자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비난했고, 이 때문에 친모를 계모로 바꿨다.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계모들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어 버린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모로 인한 비극적인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계모에게 덧씌워진 억울한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계모들도 많다. 훌륭한 계모 이야기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계모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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