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오는 6월 2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지난 2일 예비후보 등록을 받기 시작함으로써 선거바람이 점차 거세어져 간다. 이번 선거는 엄밀히 말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일꾼을 뽑는 지역선거가 돼야겠지만  결코 지역 이슈의 한계에 머무는 조용한 선거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선거의 분진(粉塵)과 혼탁함이 나라 전체를 뒤덮어 유권자의 냉정한 발심(發心)과 조용한 심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선거가 여태껏 그래왔다.

국민들의 정치사회의식이 뒤집어지게 변하고 발전했지만 선거는 창피하게도 이렇게 구태의연하다. 민주사회의 선거는 교과서적으로는 스포츠에서와 같이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이어야 맞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선거에서 지는 것은 곧 패가망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패배는 없으며 오로지 이기고 봐야 한다. 그것이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죽고 사는 맹수들의 싸움 본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 같다. 선거가 이렇게 살벌한 것을 정치인들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하다. 선거제도와 법률, 각종 규정, 선거관리에 있어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소망스럽지는 않지만 이번 선거가 더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으로 예감되는 것은 야당들이 일제히 들고 나오는 정권의 중간 심판론이다. 야당들의 의도가 그렇다면 중앙정치가 그대로 투사되는 것이 우리의 지방선거이므로 3년 후에 있을 대선(大選)의 전초전쯤으로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흘러가기 쉽다. 뿐만 아니라 정권 심판이라는 큰 슬로건으로 승리를 거두어 현 정권의 힘을 빼앗자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한가한 지역 일꾼론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유도해 내려는 여당의 전략이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가 천하를 꽉 채울 것이다. 그야말로 지방선거인데 지방선거의 본질에서 벗어난 창과 방패의 맞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한 ‘모순(矛盾)’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선거분위기에 휘둘리면 유권자의 셈법은 상당히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찍을 사람을 정해두었을 뿌리 깊은 당원이나 정파의 소속원이라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햄릿 식의 고민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선거를 할 것이야 말 것이냐, 선거를 한다면 붓 꼭지를 어디에 눌러야 할 것이냐를 놓고 망설이는 소위 대다수의 부동층에게는 이런 선거 분위기가 확실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모두 흙탕물을 휘젓는 동류(同類)의 존재들인데 누구를 찍나, 숱한 선거 경험으로 보아 찍어 보았자 그 물이 그 물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선거를 하면 뭘 해’라고 그들이 생각한들 감히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부동층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해서 그것을 이유 없는 선거 무관심이라고 가벼이 말하는 것이 잘못이다.
부동층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은 대선인지 지방선거인지 헷갈리는 선거 분위기, 뽑아 놓으면 결국 똑같은 행태를 보일 사람들이 조성하는 혼탁상과 공연한 살벌함에 대한 분명히 이유 있는 항의의 표시이다. 말로는 국민과 주민을 하늘처럼 섬기겠다면서 당선되고 난 후 딴 짓할 때의 배신감, 입에 발린 애국론과 지역 발전론에 숨겨진 개인 영달과 입신양명의 사리사욕에 대한 일종의 사보타지다. 선거참여에 대한 열의가 자꾸 떨어지는 유권자의 선거 피로증후군에 대한 원인을 이렇게 관련지어 생각해본다면 참된 인물들이 선거에 쉽게 진입하고 동시에 운동과정에서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런 선거 및 정당 공천제도의 확립이 시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까다롭고 복잡한 규제와 금기 사항이 많은 것이 능사가 아닌 자유스러우면서도 청정한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선거제도와 관리방안의 마련도 그런 의미에서 시급하고 절실하다.

더구나 조용하고 말이 없는 많은 부동층 유권자들이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을 표심이 진정 진솔한 민심, 천심(天心)인 민심일 것이므로 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장(死藏)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정치인들의 행태나 여야가 조성하는 선거분위기가 유권자들의 의식에 비해 실망스럽고 최선이 아닐지라도 차선이라도 선택해주어야 정치발전이 이루어지므로 우선 유권자들이 스스로 혁명적인 참여의식을 발휘해주는 것이 최상이다. 다음으로 언론과 시민 단체들의 소금과 같은 역할, 선거에 실망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들어 일으켜 세우는 헌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분위기야 어떻든, 누가 방죽 물을 흐려놓던 지역을 위해 몸을 바칠 좋은 일꾼을 뽑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대로 뽑힌 지역 일꾼이 차차 국가경영을 맡을 국가 동량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선거에 참여하면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지만 즐거움도 없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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