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영훈 작가(왼쪽)와 김흥수 코치(오른쪽)를 ‘스포츠스타 19인 감동전’ 전시회에서 만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스포츠스타와 화가와의 만남

[뉴스천지=김현진 기자]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안보는 가운데서도 뒤에서 몰래 뜨거운 땀을 흘리며 감동을 주는 스포츠스타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그 감동을 그림에 담아 전하는 화가와의 특별한 만남은 어떨까.

한지작가로 유명한 함섭 화백의 아들이며, 판화와 회화를 결합한 독특한 화법을 쓰는 함영훈 작가는 최근 19인의 스포츠스타를 모델로 한 독특한 그림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전시회는 국내 최초로 시도된 스포츠스타와 화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영광과 환호 뒤에 숨겨진 선수들의 많은 땀방울과 눈물의 이야기 등 굴곡진 인생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함영훈 작가는 19인의 스포츠스타를 직접 만나보고 승낙을 받아 그 감동을 대신 전했다. 함 작가의 그림에는 바로 선수들의 숨겨진 감동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전시 기간 중 그림의 주인공 중 하나인 반가운 이가 전시장을 찾았다. 다름 아닌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국민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국가대표 스키점프 김흥수 코치가 뒤늦게 자신이 모델로 실린 작품을 보러 온 것이다.

영화의 감동을 그림에 담아

함영훈 작가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모델로 한 작품에 대해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눈이 없으면 물을 뿌려서 연습을 하고, 물이 없으면 비올 때 연습을 해야 하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성공을 향해 고군분투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계절별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또 “산, 들을 배경으로 켤코 쉽지만은 않은 험난한 스키점프의 길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며 김흥수 코치에게 들려줬다.

생전 박물관에는 처음 와봤다는 김 코치는 “작품사진을 메일로 받아봤지만, 실제 와서 보니 매우 멋있고 설명도 같이 들으니 그림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코치는 “영화를 통해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힘을 얻게 됐는데, 너무 많은 관심과 기대가 사실 조금 부담스럽다”면서도 “얼마 남지 않은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짐하기도 했다.

▲ 김흥수 코치가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두 사람의 만남과 인연

▲ 함영훈 작가. ⓒ천지일보(뉴스천지)
1950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함기용 옹은 함 작가의 작은 할아버지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첫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함기용 옹을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당시 귀국하자마자 전쟁으로 인해 그의 우승 소식은 묻혔고, 메달까지 잃어버렸다. 2007년이 되어서야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보스턴마라톤조직위원회에서 똑같은 메달을 함 옹에게 제작해 줬지만 그는 이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를 곁에서 지켜봤던 손자 함 작가는 이것이 계기가 돼 스포츠스타의 숨겨진 감동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영화 국가대표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함 작가는 스키점프팀은 반드시 넣겠다고 작정하고 이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경기장까지 직접 찾아가는 수고 끝에 만남을 통해 4명의 국가대표 선수와 김 코치는 그림으로 다시 감동을 전하게 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코치가 된 사연

김 코치는 한국나이로 이제 31살이다. 그는 27살인 2006년부터 국가대표 코치로 활동했다. 젊은 나이에 코치가 된 사연이 궁금하기만 한데 그는 남들이 잘 모르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을 꺾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2003년 아시안게임 당시 5명이 국가대표로 참가했지만, 4명만이 출전했던 단체전에 김 코치는 들지 못했던 것이다. 4명은 금메달 자격으로 군 면제 혜택을 받을 때, 김 코치만 홀로 쓸쓸히 바로 군대를 입대하게 됐다.

선수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그는 3년간의 공백으로 제대 후에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해 트레이너의 길을 갔고, 다행히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국가대표 내에서도 맏형인 그는 “아쉽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선수들이 이뤄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아직 세계적인 수준이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선수들과 함께 그 수준까지 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영화 <국가대표>와 실제는?

▲ 스키점프 김흥수 코치. ⓒ천지일보(뉴스천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국가대표와 실제는 어떨까. 우선 실제보다 훨씬 나이가 많게 등장하는 김 코치가 다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가 무척 많은 줄로 착각한다고 해명한다. 그는 실제 차헌태(하정우 분)의 스키점프 장면의 대역을 맡았을 정도로 아직 젊다.

또 차헌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사람이 갑자기 스키를 다시 시작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모두 어릴 때부터 십년 넘게 선수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그는 이 때문에 “가끔 몇몇 청년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자신도 국가대표 스키점프 시켜달라고 말하곤 한다”며 “관심은 좋지만 스키점프가 체계적인 훈련 없이는 어려운 종목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정도에 올림픽에서 메달 직전까지 가며 감동을 줬던 모습은 영화의 감동을 위한 픽션이다. 그러나 그동안 월드컵대회나 컨티넨탈컵 등 최고 선수들과 어깨를 겨루는 대회에서 10위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많이 묻혔다고 김 코치는 말한다.

열악한 환경의 스키점프 현주소

영화에서 스키점프가 화려하게 겉으로 비쳐졌지만 전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김 코치는 “이 정도 환경에서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다음 올림픽에서는 메달까지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경기력은 다른 인기 종목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이에 그는 “무엇보다 선수들이 실업팀에서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후배도 키워줘야 하는 시스템과 지원이 하루 빨리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함 작가 역시 “선수 및 스텝진이 갖춰져서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누군가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함 작가는 작품이 만약 다 팔리면 스키점프에 후원하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말하는 등 대신 안타까워했다.

김 코치를 격려하는 함 작가

함 작가는 “동계올림픽의 꽃은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과 함께 스키점프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며 “반드시 금메달을 따라”고 농담을 던지며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김 코치를 격려했다.

김 코치는 “현실적으로 보면 메달은 아직 무리이지만 4명 중 한 사람이라도 개인전 10위 안에만 드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발판 삼아 다음 올림픽 때는 메달을 기대해 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둬도 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 같이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막역한 사이가 된 함영훈 작가와 김흥수 코치. 열악한 환경에서도 땀을 흘리며 감동을 만들어내는 스포츠스타와 이를 그림으로 전할 화가, 이 두 사람의 열정이 앞으로도 깊은 감동으로 모두에게 전해지길 기대한다.

▲ 이번 계기로 막역한 사이가 된 김흥수 코치와 함영훈 작가.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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