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숙 작가의 작품 ‘ARTIFICIAL LANDSCAPE- White Material’ (사진제공: 장승수 변호사)

“표절 분쟁, 보통 합의로 마무리”
“일방적 주장에 힘든 시간 보내”
“표절, 합리적인 근거 있어야”

김 작가, A작가 상대 민사소송 승소
법원 “별개의 독창성 지녔다” 판결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창작 활동을 하는 분야에선 작품을 놓고 심심치 않게 표절 시비가 일어난다. 정확한 판단 기준이 없어 대중은 혼란스럽다.

이러한 가운데 1년여 전 시작된 미술 작품 표절 논란의 법적 싸움을 일단락하는 판결이 나왔다. 김종숙 작가가 지난해 A원로작가를 상대로 진행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 판사는 “표절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린 것. 판사는 장장 23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김종숙 작가와 A작가의 작품세계를 분석했다. 시시비비를 떠나 표절의 개념을 정리해볼 수 있는 자료가 나온 셈이다. 

이번 판결 내용을 통해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표절과 창작의 경계를 들여다봤다. 또한 판결에서 승소한 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심경을 들어봤다.

―어떤 작업을 해오고 있나.

지난 2005년 이래로 현재까지 인공풍경(Artificial Landscape) 연작을 제작해왔다. 특히 조선시대의 진경산수를 아크릴 회화로 재현하고 그 위에 크리스털을 붙여 풍경을 재창조한다.

즉 크리스털을 매개체로 해 도시적이고 화려한 소비문화의 성격인 스펙터클하고 매혹적인 표면을 ‘크리스털 페인팅’이라는 새로운 회화적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회화 위에 덧붙여진 크리스털 그림은 전통회화의 재해석인 동시에 황홀한 빛의 진동으로 깊이와 가치를 더해준다. 

―작품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법정으로 가게 된 이유는.

사실, 작가대 작가로서 작업에 대한 논의가 선행됐다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대방과 얘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더구나 상대방은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표절 주장을 나에게 직접 제기한 게 아니라 당시에 초대전을 치르기로 했던 갤러리 측에 여러 차례 메일로 표절을 제기해 전시 취소를 종용함으로써 문제의 사안이 심각해졌다. 뿐만 아니라 메일의 내용엔 허위 내용과 모욕적인 발언도 담겨있었으므로 업무방해, 명예훼손이라는 불법 행위와 관련돼 ‘표절’ 분쟁이라는 핵심쟁점이 법적인 범주 안에서 복잡한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은 법으로써 이 세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만 했다. 

▲ 법원 판결문 중 독창성을 도용하지 않았다는 내용 (자료제공: 장승수 변호사)

―법원 판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핵심 쟁점은 ‘표절’ 문제였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고전산수에 크리스털을 쓰는 시각적인 유사점을 한 작가만의 고유한 독창성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각자의 작품 여러 점을 직접 검증한 결과 제작방식과 표현기법의 차이로 인해 ‘두 작가의 작품들이 구분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는 바 원고와 피고가 옛 그림에 크리스털을 부착하는 작업을 언제 시작하였는지 불문하고 원고의 작업은 피고의 작업과는 별개의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피고의 독창성을 도용했다는 표현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게다가 판결문에서 원고는 일명 크리스털 페인팅이라는 방식을, 피고는 일명 디지털 산수라는 작품방식을 각각 지향하고 있다고 그 차이를 말하고 있다.

―이번 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는.

외부적으로는 논란을 종결지은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창작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수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법원 판결은 국내 미술계에서 유례가 없다. 대부분의 표절 분쟁은 개인 간의 합의로 조용히 마무리돼 표면으로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판례가 될 거라 본다.

창작 활동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작가들이 자신의 창작성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의 창작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건전한 미술문화가 수립될 수 있다. 특히 표절과 저작권으로써 공격하려면 상대방의 창작성에 대해 면밀한 검토와 확실한 근거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판결은 무책임하고 신중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다룬 사례가 될 것이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나의 결백과 진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이 문제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언론에서 기사화했을 때 그 당시의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그 전파력은 엄청났다. 이 논란의 진실은 왜곡된 채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협소한 미술계에서 표절 의혹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여태까지 10년 넘게 몰두해온 나의 창작성은 송두리째 부정됐다. 이 논란을 제기한 자가 유명 원로작가였기 때문에 미술계에선 그의 말을 더욱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그로 인해 그 당시 진행 중인 모든 일은 보류되거나 중지됐다. 다음 행보에는 비상등이 켜졌고 미래가 없는 참담한 현재가 됐다. 외출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현대미술에선 비슷한 표절 관련 논란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미술에서 법률적으로 ‘표절’이 뜻하는 바와 일상에서 통용되는 ‘표절’이라는 의미를 혼돈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막연히 비슷하면 표절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대중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표절을 언급하거나 예술가 또는 전문가로서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는 표절이라는 말의 의미에 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표절에 관해서 발언해야 한다.

표절이라는 문제가 건전하게 담론화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아예 작업을 못하도록 공격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절로써 문제 삼기 전에 한번쯤 개개인의 창작의 자유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순수미술에선 아이디어(콘셉트)와 표현기법을 도용했을 때를 표절이라고 본다. 이는 법리적 측면에서 저작권으로 설명되어진다. 반면 현대미술에선 누구나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다. 표현기법 면에서 그 차이가 충분히 인정된다면 먼저 이미지를 선점했다고 해서 나중에 제작된 작품에 대해 표절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젊은 작가들 또는 앞으로 작가가 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작가든지, 중견작가든지 간에 표절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극심한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해결점이 보일 수 있으니까.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젊은 작가들 중엔 ‘분명히 표절이 아니고 표절과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 원로 작가를 상대로 해서 자신의 창작의 권리를 지켜보겠다고 대항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고 승산이 없다’고 전망했다. 나조차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구조적인 모순과 불의에 대항해서 나의 진실을 관철시킬 자신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절망했으며 고통을 회피하고 싶었으나 결국 피하지 않았고 부딪쳤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기적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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