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에 출연한 배우 김태훈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작년에 악역을 많이 맡아 한 이미지로 고정될까 우려돼

연기 위해 홀로 기숙사 생활하며 우울감·외로움 극대화

눈이 오지 않아서 영화 제목 ‘산행’으로 바꾸자고 농담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배우로서 고민은 항상 하는 것 같아요. 영화 속 인물이 돼야 하는 것도 맞지만 관객들과 소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악역을 많이 해서 너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되더라고요.”

요즘 MBC 수목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 ‘김건학’ 역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김태훈이 이번엔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감독 김희정/제작 인스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에서 김태훈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산 중 요양원인 테레사의 집을 찾은 알코올 중독자 ‘정우’로 분했다. ‘정우’는 테레사의 집에서 수녀 ‘마리아(박소담)’와 포수 ‘베드로(최무성 분)’를 만나면서 교감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치유한다.

그동안 김태훈은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앵그리맘’ 등에서 흡인력 있는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마님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 송파구 월드타워 롯데시네마에서 만난 김태훈은 악역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기자들을 대하는 싫지 않은 수다쟁이였다.

김태훈은 “‘무한도전’ ‘쇼미더머니’ ‘케이팝스타’ 등을 즐겨 본다”며 “오디션 프로에서 하는 심사평이 연기에도 해당하는 점이 많다. 잘하는 친구들의 음악을 들으면 즐겁고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고 그런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제법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김태훈은 관객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전주영화제 때 보고 두 번째 보는 것이다. 처음에 볼 땐 제가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대해서 보게 된다. 쑥스럽기도 하고…”라며 “이번에 다시 보니 기본적으로 관객들하고 소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영화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루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자 ‘정우’를 연기한 김태훈은 실제론 몸이 좋지 않아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를 연기하기 위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손을 떨거나 섬망(발작하거나 환각을 보는 증상)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힘든 것보다는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날씨가 춥고 이런 부분은 전혀 고통스럽거나 힘든 게 아닌데 표현을 잘하고 있는지를 의심·고심하게 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한 달 안 되는 기간 나주의 한 대학교 기숙사를 숙소로 썼어요. TV도 없고, 하얀 벽에 난방도 히터인 곳. 그런 공간에 있다는 것이 사실은 더 사람을 우울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 같고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을 극대화하려고 혼자 있었어요. 이게 과연 잘 표현됐을까 걱정이에요. 판단은 관객들 몫이죠.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 김태훈은 이 영화 섭외를 몇 차례 고심했다. 김희정 감독이 “할 거에요? 말 거에요?”라고 호통을 쳐도 확답을 하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자 흉내만 내서는 캐릭터가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알코올 금단 섬망에 시달리는 정우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경계를 헤맨다. 꿈이 깨고, 또 깨고, 현실인 줄 알았는데 또 깬다. 그는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라는 말은 섬망을 자각시켜주는 것이다. ‘정신 차려라’ ‘이제 괜찮냐’고 ‘정우’에게 물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에 출연한 배우 김태훈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남 나주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을 했는데 눈이 오지 않아서 문제였어요. 눈길을 걷는 남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나주가 워낙 따뜻해서 눈이 와도 다 녹고 그랬죠. 일정을 미룰 순 없고 대책도 없고…. 제가 우스갯소리로 제목을 산행으로 이름을 바꾸면 해결되지 않느냐고 그랬죠(웃음).”

‘설행’에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 눈이 많이 등장한다. 하얀 눈 위에서 갈등과 분노, 치유 등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이 탄생한다.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의 많은 장면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촬영 막바지에 기적처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왔다. 숙소에서 기다리던 김태훈은 전화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다.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많이 좋아해 주고 제가 그 중 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에요. 오래오래 한 단계씩 밟아 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오래 하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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