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을 편하게 하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현대사회가 복잡할수록 이와 연계돼 법률과 제도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데 그럴수록 규제는 더욱 늘어나고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국민생활에 불편한 일들이 많이 발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도적으로 불필요하거나 설령 필요하다고 해도 내용상 문제가 있어 국민 불편이 따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나 공무원들이 나서서 제도상 문제된 규정이나 민원(民怨)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고쳐야 함에도 현실에 안주하고 있으니 국민들만 불편을 겪게 된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내용이 남아 있거나 보완·개선돼야 할 내용이 종전대로 남아 있으면 적용받게 되는 사람들은 정말 고달프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규제’라 하면 경제규제를 떠올리는 바, 경제규제는 시장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게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실패가 아닌 시장의 불완전성,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자기들이 작업 시에 부딪치게 될 위험이나 건강피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의 원리에만 맡겨둘 경우 서비스 공급이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생겨날 수 있으므로 이것에 대한 보완책으로 경제규제가 필요한 면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규제는 조금 다르다. 우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존재하느니만큼 정부에서는 규제 내용을 잘 살피고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하건만 공무원들이 손 놓고 있어 국민 불편이 따르게 되는데 그런 사례들은 많다. 일반인들이 생활해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의료소비자의 권익보호, 환경의 보호, 근로자의 보건과 안전 유지 등 일련의 활동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회적 규제는 사회전반에 걸쳐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바 국민이 준수하는 과정에서 불편이 따른다. 따라서 정부나 공무원들이 국민 불편이 없도록 잘못된 규정은 개선해야 하나 무시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방기(放棄)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복지사회에서는 복지의료 등 분야에서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난다. 많은 난제들이 있지만 의료법상의 잘못된 제도로 인해 의료소비자들이 피해 겪는 것을 필자는 보았고, 또 사실관계를 보건복지부에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제도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그토록 바쁜 부서이고 일거리가 많아 종일 민원들로 북새통을 일으키는 줄은 차마 몰랐다. 

사람이 살다보면 건강이 여의치 못해 병원에 입원해 진료를 받고 퇴원하거나 잘못돼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따른다. 병원진료 등을 두고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진단서, 진료기록이나 혹은 입원 중 사망한 경우에 사망진단서나 사후 일처리를 위해 진료기록들을 발급 신청하게 되는데, 병원의 진단서 등 발급 자체 규정은 의료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환자가족들이 진단서를 발급받을 경우에는 의료법 제17조 규정에 의해, 진료기록 등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발급받을 경우에는 동법 제21조 근거에 의해 적격을 가진 신청인이 신청해야 한다.

의료법에서는 생존 환자의 진단서, 의료기록 열람 또는 사본을 발급받으려면 본인, 환자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또는 배우자의 직계 존속이라야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환자가 의식불명이나 사망 등으로 환자 동의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환자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또는 배우자의 직계 존속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의료법 규정을 병원이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 특별한 경우에 문제가 생겨나고 연고자들이 불편하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한다. 

허다한 경우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친정부모와 시부모가 없는 기혼 여성이 슬하에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한 경우 병원 입원 후 의식불명 또는 사망했을 때는 사망진단서나 의료기록 사본 발급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는 점이다. 설령 형제자매가 있다 하더라도 의료법 제17조나 제2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서류 적격 신청자가 아니다. 이 여성의 경우 설령 배우자가 생존해 있더라도 오랫동안 별거중이거나 집을 나가 연락 두절된 때에도 마찬가지다. 의료법에 의하면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기타 친족들이 서류를 신청할 자격은 없는 게 문제다.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을 터에, 보건당국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는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바 이러한 사회적 규제들과 소극행정은 정부 부처에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무원이 사회적 규제를 그대로 두고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권익을 침해하는 소극행정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차제에 인사혁신처가 나서서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개정해 앞으로 소극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준 공무원은 공직에서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은 일리가 있다. 형제자매조차 신청인이 될 수 없는 의료법 문제 규정을 보건당국이 간과해 국민 불편을 겪게 하고, 엉뚱하게 병원에서만 변명하느라 궁지에 몰리고 원성을 듣게 되니 사회적 약자와 병원에 대해 갑질을 하는 보건복지부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은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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