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설행’ 스틸. (사진제공:㈜인디플러그)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 남자가 눈밭을 울면서 걷고 있다. 그가 왜 우는지, 왜 눈밭을 걷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외로운 뒷모습이 사연을 말해주는 것 같다.

영화 ‘설행-눈길을 걷다’는 알코올 중독자 ‘정우(김태훈)’가 겪고 느끼는 것을 집중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다.

영화는 정우와 그의 어머니가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산 중 요양원인 테레사의 집으로 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라는 존재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특별한 존재다. 알코올 중독자인 정우에게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렇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테레사의 집을 도착한 정우. 그곳에서 신비로운 수녀 마리아를 만난다. 섬망 증상에 시달리는 정우. 그런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리아. 닮은 점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던 이들에게는 고통, 외로움, 갈망 그리고 감춰진 상처가 있다.

▲ 영화 ‘설행’ 스틸. (사진제공:㈜인디플러그)

“우리의 영혼은 연결되어 있어요. 설명하긴 어려워.”

정우는 마리아로 인해 치유되고 마리아는 정우로 인해 치유된다. 둘은 사랑, 애정이라는 평범한 감정을 넘어서 특별한 의미로 서로에게 자리 잡는다.

나아지지 않는 알코올 중독 증세. 정우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때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말하는 포수 ‘베드로(최무성 분)’가 등장해 정우에게 촌철살인 같은 말을 던진다.

영화는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배경음악, 배우들의 연기, 소품 등이 과하지 않아 하얀 눈처럼 깔끔한 인상을 준다.

최근 MBC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한 여자를 향한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로 열연하고 있는 김태훈은 이번 영화에서 알코올 중독자 정우로 색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김태훈은 알코올 금단으로 섬망 증상에 시달려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경계를 헤매는 정우로 완벽히 분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꿈이 깨고, 다시 꿈이 깨고, 또 꿈이 깨는 장면이 반복된다. 정우가 등장인물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다. 그만큼 영화 또한 현실과 꿈을 오간다.

김희정 감독은 “정우가 알코올 중독의 선망 증세를 겪는 이야기이다. 정우는 내가 현실을 살고 있는지 꿈꾸고 있는 것인지 그 사이에 있는 인물이다”며 “어쩔 수 없이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영화 ‘설행’ 스틸. (사진제공:㈜인디플러그)

또 김 감독은 “앞으로도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인데 우리가 왜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관심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은 사제들’로 충무로의 기대주가 된 박소담의 풋풋한 연기도 볼 수 있다. 주목받기 이전에 촬영된 박소담의 연기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을 예쁘게 밟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지난해 제50회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올해 제39회 스웨덴 예테보리국제영화제 초청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다.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대면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은 영화 ‘설행-눈길을 걷다’는 오는 3월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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